새로 돋아난 봄 냉이를 엷은 된장에 끓인 국이 아침 밥상에 올랐다.
냉이국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 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몸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는 것 같았다.
국 한 모금이 몸과 마음속에 새로운 천지를 열어주었다.
달래는 냉이와 한 짝을 이루면서도 냉이의 반대쪽에 있다.
똑같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태어났으나 냉이는 그 고난으로부터 평화의 덕성을 빨아들이고,
달래는 시련의 엑기스만을 모아서 독하고 뽀족한 창을 만들어낸다.
달래는 그 작고 흰 구슬안에 한 생애의 고난과 또 거기에 맞서던 힘을 사리처럼 간직하는데,
그 맛은 너무 독해서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쑥,
그것들은 여리고 애달프다.
쑥은 낯선 시간의 최선전을 이끌어간다.
쑥들은 보이지 않게 겨우 존재함으로써,
그 강고한 시간과 세월의 틈새를 비집고 나올 수가 있는 모양이다.
쑥은 된장국에게 바친 내용물은 거의 전부가 냄새이다.
그 냄새는 향기가 아니라 고통이나 비애에 가깝다.
그래서 그 국물은 쓰고 또 아리다.
이 풀은 풀의 비애로서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준다.
미나리는 전혀 종자와 근본이 다르다.
겨울 강가의 얼음 갈라진 틈으로, 이 새파란 것들은 솟아오른다.
미나리에는 자나간 시간의 찌꺼기가 묻어 있지 않다.
미나리에는 그늘이 없다.
미나리는 발랄하고 선명하다.
마나리의 맛은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시간의 맛이다.
지난 겨울은 너나없이 춥고 힘들었다.
새들이 떠난 강가에 우리는 산다.
사람은 새처럼 옮겨다니며 살 수가 없으므로 기진맥진한 강가에서 또 봄을 맞는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하고 쓸쓸해진다.
그러나 기어코 봄은 오고 지천으로 봄나물은 돋아난다.
- 지은이 김훈 - 자건거여행 -펴낸곳 : 생각의 나무 - 개정판 1쇄, 2007. 6. 22 - p 33 ~39 |
냉이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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