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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원효의 사랑법 뒷담화

산들행 2010. 4. 27. 09:15

  당나라로 가는 길에 의상과 원효 두 청년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나누어 마시고 헤어졌다.


  의상은 명문가의 아들이고, 원효는 하위직 관리의 아들이었다. 의상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지식인이었으므로 명문가의 여인을 만날 듯싶지만, 산둥 바닷가의 여염집 딸한테 걸려들었다. 원효는 행적으로 보아서 하층민의 딸과 연애해야 마땅할 것 같지만, 원효의 애인은 요석공주다. 선묘는 처녀고, 요석공주는 과부다. 의상은 여자로부터 도망치고 외면하지만 원효는 밤중에 제발로 애인집을 찾아간다.


  원효는 사랑의 깃발을 당당히 내세우면서 여자한데 가지 못하고, 여자 집 앞에서 일부러 개울에 빠져서 옷을 적시고, 옷 좀 말려달라는 구실로 여자한테 접근했다. 옷을 말리자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설총은 그날 밤에 잉태되었다.


  의상은 한사내로서, 그리고 한 구도자로서 선묘라는 여인과 함께 나온다. 선묘는 중국 산둥반도 바닷가 여자로서 의상의 공부를 뒷바라지 하면서 온갖 일용잡화를 구해바쳤다. 그러나 의상은 일언반구 말을 걸지 않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의상은 공부를 마치고 한마디 말도 없이 신라로 돌아갔다. 선묘는 의상을 태운 배가 떠난 부둣가에서 바다에 빠져죽었다. 의상은 돌아와서 부석사를 세웠는데, 선묘의 넋은 용이 되어 부석사 무량수전 밑 땅속에서 이 웅장한 화엄종찰을 떠받치고 있다. 부석사는 선묘를 위한 제각을 세웠다.


  선묘의 꿈은 살아서 솥단지를 들여앉히고 밥상을 차리고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가엾은 선묘는 죽어서 용이 되었고, 지금도 아득히 높은 애인의 절을 지키고 있다. 이것이 부처님 나라의 사람법이라고 해도 선묘의 넋은 여전히 가엾다. 불법의 바다는 넓고, 슬픔의 바다도 넓다.


  원효는 살아 있는 여자의 몸에서 아들을 낳았고, 의상은 죽은 여자의 넋 위에 절을 지었다. 살아있는 여자의 몸에서 아이도 낳고 절도 지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 자전거여행, 김훈            자전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