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죽의 유래와 종류

산들행 2011. 1. 21. 13:18


농경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밥이나 떡에 앞서 곡식으로 만든 최초의 음식이 바로 죽이다. 토기에 물과 곡물을 넣어 끓인 것이 죽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쌀 등의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오랫동안 끓여서 만들기 때문에 곡물의 녹말이 충분히 호화되어 위에 부담이 없다. 밥보다 소화가 잘되고 영양소도 빠르게 흡수되어 뇌와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는 까닭에 예부터 건강서에도 아침에 죽을 먹으면 몸에 이롭다는 기록이 많다. 허준이 지은 < 동의보감(東醫寶鑑) > 에는 '백죽(白粥)'이라 하여 조반으로 죽을 먹으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나와 있고, 순조 때 실학자였던 서유구가 쓴 <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 > 에는 < 죽기(粥記) > 를 인용하여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죽 한 사발을 먹으면 배가 비어 있고 위가 허한데 곡기가 일어나서 보의 효과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또한 죽은 매우 부드럽고 매끄러워 위장에 좋다'고 쓰여 있다. 여기에는 '죽십리(粥十利)'라 하여 '이른 아침에 죽을 먹으면 열 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죽이 혈색을 돕고, 기운을 돕고, 수명을 늘리고, 안락하게 하고, 말을 잘하게 하고, 풍증을 없애고, 음식을 잘 내리게 하고, 말소리가 맑고, 주림을 제하고, 갈증을 없앤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죽반(粥飯)'이라 하여 아침에는 죽, 낮에는 밥을 먹는 것이 오랜 관습으로 되어 있다.


죽은 하루를 시작하는 건강식으로 우리 식문화와도 연관이 깊다. 첫 끼니를 들기 전에 밤새 공복이었던 속을 달래는 자릿조반이라는 풍습이 있었을 정도. 이른 아침부터 초조반, 조반, 낮것상, 석반, 야참 등 다섯 번의 식사를 올렸던 궁중에서도 초조반으로 죽을 내어 속을 달래주었다. 뿐만 아니라 죽은 넣는 재료에 따라 보양식이나 별식이 되기도 했으며, 보릿고개 시절처럼 먹을 것이 부족할 때는 구황음식으로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다.


◆ 기본 죽

죽은 멥쌀이나 찹쌀을 불려 5~7배 되는 물을 넣고 40~50분간 뭉근한 불에서 오래 저으며 쑤는 것이 정석. 곡물을 어떻게 쑤느냐에 따라 흰죽, 원미, 무리죽, 암죽, 미음, 응이 등으로 나눈다.


흰죽 : 가장 기본이 되는 죽. 통쌀로 끓이거나 갈아서 끓이기도 한다. 불린 쌀과 물의 비율은 1:6 정도가 적당하다. 통쌀로 끓이는 경우,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에 볶다가 끓이기도 한다.

암죽 : 엄마 젓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던 암죽. 원래 밤으로 묽게 쑨 '밤죽'이 암죽으로 바뀐 것으로, 요즘에는 쌀이나 다른 곡식가루를 물에 타서 묽게 쑨 죽을 말한다. 바로 끓이면 뭉치기 쉬우므로 물에 타서 잘 푼 다음 냄비에 붓고 새로 물을 부어 끓인다.

원미 : 쌀알을 굵게 갈아서 쑤는 죽. 대개 절구에 쌀알이 반쯤 으깨지도록 갈아서 사용한다. 서양의 오트밀과 비슷하다. 채소죽을 쑬 때 많이 쓴다.

미음 : 죽 중에서 농도가 가장 묽은 것으로 물을 많이 붓고 끓인 다음 체에 걸러 마시는 유동식이다. 불린 쌀을 쌀알이 완전히 퍼지도록 뭉근한 불에 푹 고아 체에 거르는데, 불린 쌀과 물의 농도는 1:9 정도가 적당하다.

무리죽 : 쌀알을 형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곱게 갈아서 쑨 죽으로 비단죽이라고도 한다. 분쇄기나 블렌더에 불린 쌀과 함께 물을 조금 붓고 곱게 갈아 끓인다. 잣죽, 흑임자죽 등을 끓일 때 주로 쓰는 조리법이다.

응이 : 예전에는 율무의 앙금으로 쑨 것을 가리켰지만 요즘에는 곡물의 앙금을 받아서 쑨 죽을 통틀어 응이라고 한다. 곡물의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서 끓이거나 간 재료를 그대로 가라앉혀 웃물은 버리고 앙금만을 받아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 쑨다.


◆ 젊어지는 보양죽 : 참깨죽 & 흑임자죽

깨죽에는 삼거지덕(三去之德)이라 하여 늙어서 풍이 없고, 흰머리가 검게 되며, 근심까지 없애주는 세 가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참깨와 불린 쌀을 함께 쑨 깨죽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죽으로 불린다. 참깨를 가리키는 옛말인 '효마자(孝痲子)'도 참깨가 부모에게 아들보다 더 효도한다는 뜻. 검은깨와 불린 쌀을 곱게 갈아서 쑨 무리죽으로 맛이 담백하고 신장에 특히 좋은 흑임자죽은 조선시대 왕가에서 초조반으로 가장 즐겼던 죽이다.

검은깨는 한약명으로 '흑지마(黑脂痲)'라고 불리는데,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뿐해지고 늙지 않으며 배고프거나 목이 마르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한다. 검은깨는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지방 운반을 돕는 레시틴이 풍부한데, 뇌를 이루는 성분이므로 정신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나 수험생에게 특히 좋다.


◆ 임신한 왕비의 보양죽 : 순무씨죽

순무는 오장을 이롭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기를 늘리는 식품으로 임산부에게 좋다. 특히 경기도 강화, 김포와 황해도 연백의 특산물인 순무씨(만청자)로 만든 죽은 임신한 왕비를 위한 보양식으로 태교음식 중 하나였다.

궁중에서는 순무씨를 삶아서 말린 후 다시 삶아 말리기를 세 번 거듭한 다음 곱게 가루 내어 쌀과 함께 죽을 쑤어 임신한 왕비에게 올렸다고 한다.


타락죽 & 녹두죽

타락(駝酪)이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로, 타락죽은 우유죽을 말한다. 예전에는 궁중과 특권계급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약재로 궁중의 내의원에서 송아지를 낳은 암소의 젖을 짜서 약처럼 처방하여 임금에게 올렸다. 쌀을 갈아 물 대신 우유를 넣어 쑨 고소하고 기름진 특별 보양식으로, 아이 이유식으로도 좋으며 아침에 입맛 없을 때 걸쭉한 차 한 잔을 마시듯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또한 영양죽과 치료죽으로 손꼽히는 것이 녹두죽이다. 녹두의 성분은 팥과 비슷한데 곡식 중에서 콩 다음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고 리놀산과 리놀레산과 같은 >불포화지방산도 들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열이 나는 환자에게 녹두죽을 먹이는데, 몸을 차게 하면서도 흡수성이 좋아 입술이 마르고 입 속이 헐었을 때나 피로 회복에도 좋다.


◆ 두뇌 발달을 위한 약죽 : 국화죽

한방에서 국화는 폐와 간장에 작용해 특히 간 기능을 증강시킴으로써 시력을 보호한다고 한다. 또한 국화죽을 아침마다 즐기면 뇌의 신진대사를 도와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때문에 약죽으로 불리며 기억력이 감퇴해 건망증이 잦은 사람과 원인불명의 투통이나 현기증 등 머리가 맑지 못한 사람에게 좋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들의 두뇌 발달을 돕는 식품으로 국화죽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 입맛 돋우는 영양식 : 버섯채소죽

최근 건강에 좋다 하여 주목받고 있는 버섯과 채소를 이용한 버섯채소죽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과 항암작용에도 효과가 뛰어나며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도 좋아 웰빙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다.


에쎈   | 입력 2011.01.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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