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의 애환이 담긴 흑빵
러시아 음식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다양하지 않고 대체로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칼로리와 열량이 높아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매우 적합하다.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명물로 꼽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쓴맛을 내는 흑빵이고, 두 번째는 아름다운 러시아 아가씨들이며, 세 번째가 보드카이다.
호밀을 주원료로 해서 만드는 흑빵, 일명 초르니 흘렙(Chorny hleb)은 오랫동안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아 온 음식중 하나다. 밀가루를 정제해서 만드는 부드러운 하얀 밀빵과 달리 흑빵은 일단 딱딱한 데다 입에 넣고 씹으면 신맛이 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선뜻 먹기 힘들지만 먹을수록 시큼한 맛이 색다른 별미라는 걸 알게 된다.
러시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가난한 농민들은 초르니 흘렙을 주식으로 삼았다. 결혼식을 하거나 멀리 여행을 떠날 때도 이 빵을 먹었다. 시대가 흘러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으로 들어서자 도시의 노동자들도 흑빵을 자주 먹었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은 흑빵 한 덩어리와 물 한 컵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나폴레옹은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일부러 하얀 빵 대신 검은 빵을 먹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의 군인들은 흑빵을 주식으로 먹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나치에 맞서 ‘대조국 전쟁’을 벌이던 2차 대전 당시의 소련 군인들도 흑빵을 먹었다. 소련 군인들은 트럭을 타고 이동할 때 흑빵을 깔고 앉았다가 식사 때가 되면 칼로 그 빵을 잘라서 먹었다. 밤이 되면 빵을 베고 잠들고 말이다. 즉 흑빵은 소련 병사들에게 한 끼 식사였을 뿐만 아니라 의자 겸 베개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으니,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상용품이었던 것이다.
효모 넣은 물에 흑빵을 넣고 발효하면 크바스(Kvas)라는 알코올음료가 된다. 전통적인 크바스는 알코올 함량이 4 퍼센트 내외로 매우 낮았다. 그래서 러시아나 폴란드, 우크라이나 같은 슬라브 족 사회에서는 크바스가 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청량음료로 여겨졌다. 동유럽에서는 물 대신 크바스를 마시기도 했는데 이는 물에 석회석이 섞어 나올 정도로 수질이 나빠서였다. 대게 크바스는 밀, 보리, 호밀 같은 곡식과 효모, 맥아를 물에 넣고 나무통에서 발효해 만들지만, 곡식 대신 흑빵을 넣어도 상관없다. 물론 불쾌한 냄새를 없애려고 민트 같은 허브를 넣거나 사과나 딸기, 포도 등 과일과 설탕도 넣는다.
-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지은이 : 도현신
- 펴낸곳 : 시대의창
- 초판 1쇄 2011년 2월 21일 펴냄
- p 36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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