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민주 보드카
러시아 음식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다양하지 않고 대체로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칼로리와 열량이 높아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매우 적합하다.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명물로 꼽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쓴맛을 내는 흑빵이고, 두 번째는 아름다운 러시아 아가씨들이며, 세 번째가 보드카이다.
나라마다 국민주라고 할 만큼 애호하는 술은 하나씩 있다. 한국은 소주, 일본은 사케, 중국은 고량주, 독일은 맥주, 프랑스는 와인, 영국은 위스키, 미국은 버번위스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무엇일까? 단연 보드카이다.
하얗고 투명한 보드카는 특별한 냄새도 맛도 없지만 일단 목구멍으로 넘기면 금세 몸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감돈다. 그렇다면 보드카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보드카(Vodka)는 ‘물’을 뜻하는 러시아 단어인 ‘보다(Voda)’에서 유래했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를 생명의 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위스키를 생명의 물이라고 부르며 마신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 보드카는 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약으로 쓰였다. 점차 그 맛에 반해 술로서 쓰기 시작했는데 15세기에 이르면서 러시아인들이 즐기는 국민 술로 자리 잡는다.
보드카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 표트로 대제이다. 표트로 대제는 서유럽에 머물 때 감자를 먹어보고는 감자의 뛰어난 맛과 효용성에 감탄했다.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가난한 농민인 러시아 현실을 떠올린 표트로 대제는 감자를 러시아에서 대량 재배한다면 굶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감자는 밀이나 보리를 대신해 제 2의 빵이라 불릴 정도로 농민들에게 톡톡히 도움을 주었다. 또한 감자의 도입은 보드카 제조에도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전까지 보드카는 주로 밀이나, 보리, 호밀로 만들었는데 감자가 들어오면서 감자도 보드카를 빚는 데 쓰인 것이다. 감자를 넣어 만든 보드카는 밀이나 보리로 만든 보드카 보다 더 맛이 고소했다. 그래서 지금은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밀이나 호밀보다는 싸고 대량 생산 할 수 있는 감자를 더 많이 이용해 보드카를 만든다.
표트로 대제가 추진하던 북방 정책도 보드카와 관련이 깊다. 표트로 대제는 전통적인 군인 체제에서 벗어나 서구식으로 새로운 군대를 편성하고 바다로 통하는 영토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전쟁에는 돈이 많이 든다. 더욱이 영토만 컸지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러시아로서는 국고를 모두 털어도 병사들에게 줄 돈이 없었다. 이를 고민하면 표트로 대제는 기발한 생각을 짜냈다. 러시아인들이 일상적으로 즐겨 마시는 보드카를 국가에서 독점 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전쟁비용을 마련한다는 발상이었다. 물론 이런 구상이 순순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표트로 대제는 귀족과 평민들의 반대를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보드카의 생산과 판매에 관한 모든 권한을 국가에서 독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수많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보드카에 세금을 매길 만큼 러시아의 사정은 절박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보드카를 팔아서 번 돈으로 전쟁비용을 충당한다는 표트로 대제의 생각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폴바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대파한 그 승리의 원천이 보드카를 팔아서 번 수익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표트로 대제와 더불어 보드카 역사에 획을 그은 사람은 화학자 드미트리 멜델레예프(Dmitrii Mendeleev)이다. 그는 알코올 도수는 40도가 가장 적당하고, 그 정도 술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40도에 맞추어졌다고 한다.
보드카에 맞는 안주는 무엇일까?
러시아인들은 소금에 절인 연어나 청어를 많이 먹는다. 그밖에 캐비어나 러시아식 꼬치구이인 샤슬릭도 보드카와 잘 어울린다.
보드카는 러시아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술이지만, 값이 싼 저질 보드카도 넘쳐나 명성에 타격을 입고 있다. 또한 국민들이 보드카를 너무 마셔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지은이 : 도현신
- 펴낸곳 : 시대의창
- 초판 1쇄 2011년 2월 21일 펴냄
- p 36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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