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최문희 지음 '난설현'을 읽고

산들행 2013. 2. 27. 17:08

최문희 지음 난설현을 읽고

 

장편소설

최문희 지음

출판사 : 다산책방

페이지수 328

2011. 10. 10

 

길 문화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으로 강릉 바우길을 걸은 적이 있다. 종착지는 경포호 주변에 있던 허균 허난설현의 생가터와 기념공원이었다. 두 남매의 생가터는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쭉쭉 뻗은 소나무의 기개와는 달리 이곳은 비정한 역사속에 싹 틔운 두 남매의 문학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가슴 아팠던 것은 허난설현의 세가지 불행에 관한 이야기이었다. 천재적 여류시인 허난설현의 비극을 작가는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생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또한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지안내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를 주었다.

 

최문희 장편소설 '난설현'은 조선시대 천재적인 여류시인이었던 허초희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그려낸 책이다. 허난설현의 세가지 한은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등으로 이 세 가지 화두를 큰 줄기로 엮어 이야기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한 여인이 겪어야 했던 삶의 질곡과 고단한 아픔을 16편의 시를 토대로 승화하여 나타내고 있다.

 

난설현은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그의 재주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런 천재가 조선시대에 결혼하면서 시월드의 만행으로 천재성을 잃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시월드의 가풍은 시어머니의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것이고 남자인 김씨 집안의 것이다. 시어머니가 천재 며느리를 비극으로 이끄는 악녀의 역할을 할 뿐이다. 시어머니도 또한 그 시대의 희생양일 뿐이다. 그런 비극을 어느 누구도 제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 집안의 주축인 시아버지와 아들은 이 비극적 전개에 소극적이거나 방관하고 있다. 어쩌면 허초희의 비극은 이들 남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특히 철저하게 남의 편이 된 남편 김성립으로부터 불행이 싹 트고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난설현 허초희가 지은 약 16편의 시는 음미하면서 읽기에 매우 좋다. 책의 흐름속에 더욱 더 빛난다. 결혼과 더불어 삶이 핍박받고 제약을 받아 고독해질수록 시는 더욱 더 내면 깊이 승화되어 나타난다. 불행한 현실을 불행으로 인식하지 않고 시로서 극복한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누구에게나 불만과 억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내면 깊숙히 승화하면 시적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줄겨라 하는 말과 같이 불행에 맞서지 말고 극복하며 승화해야 한다.

 

난설현의 일생에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했다. 부모, 허균 동생, 시숙모, 하인들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그 이외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난설현의 일생에 조연으로 나오면서 그 시대 생활상을 전개하고 인간 군상의 다양함을 나타내고 있다. 전제적인 흐름은 남자중심의 유교문화에 질식될 듯이 전개되는 허초희의 불행과 이에 맞서지 않는 심리묘사이다. 시댁에서 시작되는 불행보다 친정집의 몰락과 불행에 더 큰 상처를 받고 안타까워하는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최문희의 장편소설 '난설현'은 조선시대 남자 중심 유교문화의 또 다른 희생양인 시어머니, 이기적이면서 무능한 남편 그리고 그런 조선 양반가의 가풍에 대한 강박관념이 천재적인 여인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작가가 풀어낸 그 때 그 시절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종속적인 존재로서 그려진 여인의 비극을 읽어가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다음 아고라 미즈넷에 올라오는 시월드의 만행에 관한 글들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므로 시어머니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또한 사랑스런 내 딸은 다른 집의 며느리가 되는 존재이고,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는 역할이 다른 같은 존재이다. 같은 존재이므로 같은 보편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그려내는 그런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깨달아 역사속에나 나타날 법한 그런 불행한 여인의 비극은 계속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보편적 존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개인을 사회적인 억압으로 사장시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