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감자

인디오의 감자

산들행 2014. 4. 12. 17:23

'인디오의 감자'
                 윤재철(1953∼)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안데스산맥
고산지대 인디오의 생활
스페인 정복자들에 쫓겨
깊은 산 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주식이라며 자루에서 꺼내 보이는
잘디잔 감자가 형형색색
종자가 십여 종이다
왜 그렇게 뒤섞여 있느냐고 물으니
이놈은 가뭄에 강하고
이놈은 추위에 강하고
이놈은 벌레에 강하고
그래서 아무리 큰 가뭄이 오고
때아니게 추위가 몰아닥쳐도
망치는 법은 없어
먹을 것은 그래도 건질 수 있다니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잘은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 있었다.

 

윤재철 시인의 '인디오의 감자'는 형형색색 감자가 소중한 이유를 들려준다.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면 수확량 많은 한 품종만 심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그래서 가뭄에, 추위에, 벌레에 강한 감자를 모조리 내쳤다면 잉카의 후예들 역시 살아남지 못했을 터다. 저마다 다른 씨감자의 가치는 문명의 질주에 대한 처방전이자 다양성을 보듬지 못하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 같다. 이런 감자 저런 감자가 제 소임을 다해 인디오의 생존을 도왔듯이 '다름'을 이유로 거부하고 미워하는 것들이 되레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 고미석 논설위원 : 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

- 동아일보 201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