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보은 삼년산성

산들행 2014. 5. 5. 16:21

삼년산성은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즉 보은 시내를 막 벗어나 속리산 방향으로 가다가 우회전하여 보은정보고와 군청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삼년산성은 해발 325m의 오정산에 축조되었는데, 계곡에서 흔히 볼수 있는 범한 돌로 가로 세로로 층층이 쌓은 산성이다. 대표적인 석축 산성의 하나이다. 성의 둘레는 약 1,680m이다. 신라시대에 축조되었고, <삼국사기>에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여 삼년산성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신라가 충청도와 경기도 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삼국통일 전쟁때 태종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접견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 성을 점령하려다가 크게 패했단다. 전략적으로 요충지이고 아주 튼튼한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년산성은 반원형 치성과 성내 배수를 위한 수구 등 특이한 축성 양식과 축성 및 수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대 축성법 연구에 중요한 산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너진 곳을 보면 별로 크지 않은 돌들을 층층이 아주 높이도 쌓아 놓았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출입구쪽인 서문지에서 복구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그때 복구하는 돌들을 보니 외부에서 화강암을 조달하여 쌓았고, 오래된 돌과 새로 쌓은 곳의 돌색이 아주 달라 이질감이 컸었다. 다음 해에 다시 와보니 돌색이 비슷해졌었는데 외벽쪽으로 건물 공사시 쓰는 작업 보조대에서 돌틈 사이를 들여다 보니 깊숙한 곳과 겉 표면의 돌색이 달랐다. 난 그때 알았다. 돌색 페인트도 있다는 것을..... 무엇인가 칠하면 오래된 성으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오래된 부분은 왠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은 주는데 새로 보수한 곳은 아주 튼튼하게 쌓아졌다. 오래된 곳은 오래된 돌들의 느낌인데, 보수한 곳은 갓 찍어낸 돌들의 느낌이다. 무너져 내린 돌들로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복구하면 될텐데 .... 안타깝다. 

 

 삼년산성을 출입구인 서문지에서 보면 다른 지역의 산성과 별다른 차이점을 볼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원래의 산성이였던 곳으로 가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냇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돌들을 알뜰히 쌓은 산성으로, 이 산성을 쌓기 위하여 그 많은 돌들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삼천명이 삼년동안 쌓아야만 비로소 완성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크지 않은 돌들을 많이 모아 켜켜이 아주 지극정성으로 쌓았다.

 

 서문지가 있던 추춧돌이다. 삼년산성에는 네개의 문이 있었다. 사대문이 있는 산성이다.

 

 남문지 가는 길에서 서문지와 서북치성을 바라본 전경이다.

 반듯하게 쌓아놓아 옛스러움은 없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변모해 있다.

 

 

 출입구인 서문지에서 남문지로 가는 길이다.

 저 성위에서 보은 시내와 상주 가는 길이 잘 조망된다.

 

  보은시내 전경.... 저쪽이 대전방향이다.

  저 멀리 군청과 운동장이 보인다.

 

 오래된 산성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버렸다.

 황성옛터의 노래가 절로 나올 듯한 허무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산성은 좁고 무너진 곳이 많지만 오래된 산성을 가감없이 볼수 있다. 

 

 마을 너머로 보이는 도로가 속리산 말티재로 가는 도로이다.

 산성 위에서 성밖을 보면 산성 높이가 아주 높다.

 적들은 감히 넘어올 수 없는 산성이다.

 

 적들은 넘어올 수 없지만 담쟁이는 벽을 타고 밖을 그리며 넘어간다.

 

 삼년산성에서 둘러보면 상주가는 방향, 대전방향, 청주방향, 속리산 방향으로 사방팔방이 다 보인다.

 즉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을 만 하였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남동치성이다.

 

 삼년산성은 꽃 피는 봄날에 둘러보면 좋다.

 역사를 산책삼아 둘러보는 길에 나비와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다.

 아래 야생화는 둥글레이다.

 

 성 밖은 크게 낭떨어지이므로 이렇게 안전한 산책길로 따라 걸어야 한다.

 

 처음 들어온 입구인 서문지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예전에 왔을 때보다 성 안의 나무들은 훵하니 비어가고 있었다.

 숲은 사라지고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인적도 없었다.

 성안을 보면 평평하지 않고 산등성이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편평하게 다듬으면 성안에서 활동하기도 편할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름 정리를 하였다.

 평평한 것 보다 경사진 산등성이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결국은 표면적이 넓다.

 평평한 면적보다 표면적이 더 넓어지므로 더 많은 군사와 시설들이 거주할수 있었지 않았을까?

 

   성 안쪽의 모습이다.

  성안쪽은 어느정도 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성 밖쪽은 돌들이 무너져 있었다.

 

 삼년산성의 위엄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북동치성에서 서북치성을 바라본 모습이다. 앞쪽의 봉우리가 서북치성이다.

 이 길이 가장 오래된 성 순례길이다.

 동북치성에서 청주 방향과 속리산 방향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적들의 동태를 감시하기에 알맞다.

 

 서북치성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북동치성을 되돌아 본 모습이다.

 서북치성과 북동치성에서 삼년산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작은 돌들을 높이 쌓았었고, 그 돌들이 무너져 너덜지대를 만들어 놓았다.

 저 많은 돌들을 이용해서 다시 복구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돌들로 복구된 삼년산성을 상상해보면 아주 웅장했을 것이다.

 

 북동치성..... 삼년산성에서 이곳이 가장 옛스러운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저 위험한 길로 산책을 하였었다.

 무너져 내린 돌들 사이로 고광나무가 꽃 피운 것을 본 적도 있다.

 

  한바퀴를 돌아보니 다시 입구쪽인 서문지 이다.

 한바퀴를 돌아보는데 어렵지 않았고, 오래된 산성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서문지로 오기만 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게 머여.... 무슨 지랄로 요따구로 복구했다냐?

 아주 토목공사를 해놓았다.

 애~~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