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현의 교군의 맛
도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과 관련된 인생사와 음식미학을 기대하여 본 도서를 선택하였다. 허영만의 「식객」이란 만화처럼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음식미학에 관한 소설가적 이야기를 맛보고자 하였다. 교군 삼대에 걸친 지독하고 선연한 인생의 맛이란 책 소개도 눈길을 끌었다. 독자인 나와 비슷한 나이인 작가가 풀어놓는 사회상은 나에게도 익숙한 것이어서 어떻게 해석하고 풀이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고추와 매운 맛에 관련된 이야기를 작가를 통해서 다시금 읽게 된 것도 기억을 되살리고 공감을 느끼는데 좋았다.
초반에 손김이와 가지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 허영만 「식객」 만화의 주인공 진수와 성찬과 같은 음식이야기와 사랑에 관한 전개를 예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야기는 격동의 시대에 교군 여인 삼대에 일어났던 수난과 인생에 대해 전개된다. 그 중심은 음식과 맛으로서 교군을 일으키는 이 여사이다. 김이, 미란, 손씨, 배 영감, 이 여사의 시각으로 사건과 사고를 들려주는 구성이 돋보였는데 이것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비슷한 구성이었다. 「이딴 애기 받아 적어서 뭐하려고」 말하는 이덕은 여사의 어록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고추와 매운맛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에서 서로 비슷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저자와 동질감을 느꼈다.항상 공부하고 기록하여 요리와 음식의 대가가 된 이 여사가 손김이와 이야기 전개의 중심이 된다. 배택수 영감의 몸종이었다가 세 번째 부인이 된 이 여사는 음식과 맛으로 승부하여 교군을 일으킨 음식명인이다. 아이가 없는 이 여사는 배 영감에서 손김이로 이어지는 가족사에 훼방꾼이 되질 않고 교군을 일구는 야망의 주인공이 된다. 가족의 중심이 되고자 질투하기보다 살짝 비켜서서 음식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데 인생을 집중한다. 그리고 어두운 가족사에서 일어났던 어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아내고자 오랜 세월 동안 추적한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집장 만드는 법은 독자를 초초하게 하고, 고추가 듬뿍 들어간 음식 그리고 고추술 이야기는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이 여사의 기지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손김이는 생존할 수 있었고, 다시 교군으로 돌아와서 이 여사의 오랜 기록물을 정리하고 그의 어록을 들려줄 수가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과 사고는 모두 이 여사로부터 나온다. 힘 가진 자들의 횡포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그들에게 황홀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힘 있는 자의 미각은 맛으로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같이 식사나 한번 하자는 말은 결국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소통하는 것이고, 황홀한 음식맛을 통하여 연대감이나 동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굴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간 이 여사의 인생관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충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갔기 때문이다. 현모양처의 귀감이 될 만하다.
배미란 여사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삼류소설처럼 전개된다. 미모를 앞세워 가수가 되고자 하나 욕망과 탐욕에 젖은 사내들로 인하여 고달프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다가 정계와 재계의 김씨인가 이씨인가 하는 권력자의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다시 교군으로 돌아온다. 김이는 이들의 성씨을 딴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어리버리 손 씨와 결혼한 배미란은 김이를 낳았고, 이 여사의 말실수에서 어떤 사건의 원인이 되고 그것이 교군을 위태롭게 한다. 배 영감의 변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는 상회와 그의 딸 배미란 그리고 손녀인 김이에게로 이어진다. 이 여사는 김이로 이어지는 가족관계에 질투하지 않았고 출동하지도 않는다. 배미란의 불행한 삶에서 손김이의 고단한 인생이 예고된 것이다. 하지만 김이는 홀로 꿋꿋하게 자랐고, 다시 교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이는 이 여사와 대척관계로 그려지지만 김이의 존재는 결국 이 여사의 배려와 도움 덕분이다.
복잡한 가족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음식과 맛에 전념하여 교군을 일꾼 이 여사의 삶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충돌하지 않는 것이다. 폐결핵으로 집에서 쫓겨나야 할 판이었던 상희에게 음식으로 황홀한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불행으로부터 사람을 구한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 미래가 불안정해진 김이를 구하고자 보육원에 맡기는 것도 이 여사의 탁월한 혜안이다. 이 여사의 그런 마음은 현실에 부딪히지 않고 뛰어넘는 인생관에 있다. 그런 인생관이 음식과 맛에 대한 미학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단한 인생을 매운 맛으로 다스린 것이다. 문상객을 울게 만들 수 있는 매운 맛 이야기에서 음식과 맛이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향신료를 찾아 신대륙을 탐험하는 이야기와 맛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상에도 무지기수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미학을 배울 수 있었다. 날마다 무의식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도 더 깊은 맛이 있고, 복잡한 요리과정에서 그 맛은 심오한 맛으로 변할 수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탐하는 것이다. 음식미학은 이 여사와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덕이다. 맛으로 표현되는 인생에 감사해야 한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당하고 강한 자는 조직에게 당한다는 문구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내부고발자가 된 김이가 회사에서 쫓겨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글도 모르는 손씨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그가 썼다는 유서를 증거로 내 놓는 것도 그것이다. 불행한 탄생과 성장과정에서 손김이의 담담함은 배워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충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이 여사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교군의 맛(소설)
- 지은이 명지현
- 펴낸 곳 (주) 현대문학
- 초판 2쇄 펴낸날 2012년 11월 29일
- 값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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