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마 때문에 가물다고 한다. 비가 와야 한다. 모든 것을 쓸어 버릴듯 쏟아지는 폭우 같은 비 말고, 목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그런 단비가 내려야 한다.
가물면 기우제를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농촌진흥청은 국비로 지내고, 도 농업기술원은 도비로 지내며, 시군 농업기술센터는 시군비로 지내고, 읍면장은 업무추진비로 지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이라고 고 이문구 소설가는 말했다.
구중궁궐에 음기가 쎄서 그런다고 상감마마는 궁녀를 환속시키고, 수라를 줄이며 술도 거르고 거시기도 자제했다고 한다. 한편으론 용을 닮은 석천이란 도마뱀놀이를 하면서 비 내려주기를 하늘에 빌었다.
저수지 물을 키로 이어 나르거나 물싸움하면서 비가 내리길 소원했는데 여인들은 얇은 한복을 입을지언정 속곳을 입지 않았단다. 가뭄으로 인한 실농의 공포는 곧 굶주림과 죽음이므로 신경이 쏫을 대로 쏫은 마을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리라.
흩어지는 마을 농심을 달래기 위해서 애꿎은 남의 조상묘를 파묘하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마녀사냥이 될 대상을 논할 때, WTO 과학영농 시절에 그것으로 비가 올것 같으면 이 농촌이 이리 피폐해졌겠느냐고 말했다가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금산군에 농바우끄시기라는 풍속이 남아 있는데, "하늘님! 물이 귀해 속옷을 못빨아 입어 시집을 못간다"고 애원하거나, 보름달 뜨는 산에 올라가 집단방뇨로 마중물을 뿌어댔단다.
내가 졸린데도 이리 구구절절이 써대는 이유도 이 산하를 적셔줄 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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