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채는 오래된 한정식 음식점뿐 아니라 최근 생겨난 퓨전 한정식 음식점에서도 빠지지 않는 매뉴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조재삼은 1855년(철종 6)에 완성한 《송남잡지》에서 "탕평채 : 녹두묵(청포)에 소고기·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드니 바로 나물의 골동이다. 송인명이 젊은 시절에 가게를 지나다가 탕평채 파는 소리를 듣고 사색의 당인을 섞어 등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탕평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영조 때인 1740년 좌의정이 된 송인명(1689 ~ 1746)은 당쟁을 억누르면서 탕평책을 강하게 추진한 탕평사업의 주동인물이다. 유득공은 당시 한양의 풍속을 적은 《경도잡지》에서 "탕평채라는 것은 녹두유와 돼지고기, 미나리 싹을 실같이 썰어 초장을 뿌려서 만든다. 매우 시원하여 봄날 밤에 먹으면 좋다." 만약 조재삼의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송인명이 탕평사업을 주동하기 이전부터 탕평채라는 음식이 있었으며 탕평책은 탕평채에서 이름을 빌려온 것이지, 결코 영조의 탕평책으로 인해서 탕평채란 음식이 생겨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여러가지 재료를 골고루 섞었다는 의미에서 탕평채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더 많다.
이미 《송남잡지》에서도 탕평채를 가게에서 판다고 했듯이 당시에 청포묵을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상인이 있었던 듯하다.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갑오농민 전쟁의 지도자였던 전봉준(1855 ~ 1895)은 몸이 녹두처럼 작아서 별명이 녹두장군이었다. 농민군들이 그를 기념하여 만든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도 청포묵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다. 즉,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로 시작되는 이 민요에서 당시 청포묵의 유행을 짐작하게 된다.
한정식을 판매하는 음식점에서 탕평채가 필수 매뉴가 된 때는 대략 1970년 이후로 여겨진다. 봄에 입맛을 돋워주는 경기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부각되더니, 급기야 손님상의 중심 매뉴가 되었다. 청포묵에 숙주, 미나리, 물쑥 등 채소를 섞어 무친 묵무침을 탕평채라 하는데, 양념하여 무처놓으면 쉽게 불기 쉬워 흠이다. 손님상을 차릴 때는 큼직한 접시 중심 위치에다 묵 썬 것을 소복이 담고 그 주위에 갖은 채소, 고기볶음 등을 색 맞추어 구절판에 담듯 담고, 양념장을 곁들여 내놓으면 손님이 묵과 채소를 덜어서 양념장에 무쳐가며 들도록 하면 다채롭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 사람들은 탕평채의 맛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육식에 길들여진 요즘 한국인들 입맛에 탕평채는 그저 역사가 남긴 음식으로만 부각될 뿐이다. 그것도 여전히 영조의 이름만을 안고서...
- 주영하 지음
- 식탁위의 한국사
- 발행처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1판 4쇄 발행일 2014년 1월 6일
- p206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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