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카길의 영리한 영업전략과 한국의 사료용 곡물수입

산들행 2014. 8. 23. 21:31

70퍼센트가 산이고 오천만 인구에, 1960년 이후 꾸준히 추진한 계획적인 경제정책의 결과 현재 고도의 산업화로 남한은, 공급 주체로서가 아니라 수입 식품과 수입 농산물 시장으로서 점점 매력을 더해가고 있다.

 

카길은 쌀 거래에는 관여하지 않았는데 한국의 쌀 시장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미국 쌀 제분업자협회가 한국 정부와 손잡고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카길은 한국에서 종자산업을 추진하지 않았는데 시장이 너무 작은 탓이다. 가축 사료용 곡물 수입과 사료제분업 그리고 오일시드(Oilseed) 거래가 카길이 한국에서 추진한 사업의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1970년 한국의 복합 사료 생산은 겨우 51만 톤에 그쳤으나 1991년에는 850만 톤의 수입 사료를 이용하여 1,150만 톤의 복합사료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극적 증가는 가축의 수가 증가한 것과 수입 사료를 사용해 생산하는 사료의 이용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카길이 주요 공급업자였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카길이 처음 한국에서 가축사료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허가를 얻은 것은 가축사료업계에 현대화와 합병이 진행되던 1986년이었다.

 

한국사료협회는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 스스로를 핵심 세력이라고 자처하지만 카길 역시 한국의 대미 무역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가축 정책과 육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카길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한국 내 쇠고기 생산이 감소하고 이와함께 가축사료시장의 규모가 줄어들 경우, 카길은 사료 수입업자나 제분업자로서 손해를 볼지 몰라도 쇠고기 수입업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얻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래저래 카길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영리한 다국적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 부르스터 닌 지음/ 안진환 옮김

- 펴낸곳 시대의 창

- 초판 1쇄 발행 2004년 11월 17일

- p315 ~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