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먹는 것은 대동소이하고 다만 기후와 토양에 따라 몇몇 특산물이 눈에 띨 뿐이다. 세계 어느곳이든지 농사짓고 가축을 길러 먹는 곳이라면 모두, 인류와 함께 여행하며 종자를 개량해 온 외래종을 먹는 것이고, 본디부터 제 땅에서 자란 작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 세상에는 자기 땅에서 자생하는 '우리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지에 고립된 원주민밖에 없다.
근세에 들어서 무엇보다도 현세대 인류의 음식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이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가 고향인 커피는 아랍인들의 음료가 되었다가 유럽인들에 의해 신대륙으로 건너간다. 생산량은 이제 구대륙보다 많아졌고, 콜롬비아, 과테말라, 브라질, 온두라스 같은 커피 품종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 커피는 지구를 다시 돌아 이제는 동남아시아와 네팔에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
인도가 원산인 사탕수수는 카리브해 일대를 사탕수수밭으로 변모시켜 대부분의 설탕은 여기서 생산되며, 당밀로 만든 값싼 증류주인 럼은 신대륙과 구대륙을 오가던 뱃사람의 술이 되었다. 지금은 브라질이 사탕수수의 최대 생산지이고, 원산지인 인도가 그 다음이다. 브라질은 풍부한 사탕수수를 이용해 에탄올을 만들어 자동차 연료로 쓰고 있다.
구대륙에서 건너간 밀과 콩도 남북아메리카 평원에 자리 잡아 최대의 곡물 생산지가 되었다. 면화는 북미 동남부에 자리 잡아 무명실 뿐만 아니라 면실유도 대량으로 공급한다.
예전에 신대륙에 점거했던 옥수수와 감자, 토마토와 고추, 호박 등의 작물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작물이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했다. 북미와 남미의 대평원들이 지금은 세계를 먹이는 식량창고가 된 것은 대부분이 구대륙에서 건너간 작물들 덕분이다.
한편 신대륙에서 건너간 작물 중에서도 고추와 토마토, 호박과 같은 몇몇 채소는 새로운 요리의 재료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옥수와 감자, 고구마는 구대륙의 식량부족을 메웠으며, 구대륙의 기근 해소와 인구증가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옥수수와 감자는 짧은 생육기간과 폭 넓은 적응력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구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구황작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제 이 두 작물은 단순한 구황식물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귀중한 작물이다.
신대륙에서 '신들의 열매'라 불렸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유럽에서 귀중한 음료로 대접받았고, 그래서 카카오의 수요가 증가하자 유럽인들은 카카오나무를 아프리카에 심었다. 그 사이에 초콜릿은 고귀한 귀족들의 음료에서 고형물인 초콜릿으로 바뀌었고, 공장에서 생산되는 가장 환영받는 간식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카카오는 이렇듯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주산지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겼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카카오를 생산한다.
- 식전, 팬더곰의 밥상견문록 - 장인용 지음 - 펴낸곳 도서출판 뿌리와 이파리 - 2010년 10월 30일 초판 2쇄 펴냄 - p45 ~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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