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나물 민족'이다. 그러므로 나물은 우리 조상의 먹을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실제로 우리 조상은 남자든 여자든 아홉살 무렵까지 33가지의 나물 이름을 익혔고, 여인의 경우 결혼에 앞서 그 많은 나물 종류를 알고 요리하는 것이 신부 수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민간에서는 암기의 방편으로 운율을 담은 '나물 타령'이 자연스럽게 구전되어 왔으며, "99가지 나물 타령을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나물은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어느 가정에서나 식단을 풍성하게 하는 음식이기도 했으나, 어렵던 시절 보릿고개에는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량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를 대변하는 풍습으로 '산나물 서리'라는 것이 있었다. 가난한 아낙네들이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며 뜯은 나물을 광주리에 담아 부잣집 마당에 풀어 놓으면 여주인이 나와 살펴보고는 밥을 준다. 이 밥으로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보리든 쌀이든 얼마간의 곡식을 얻어 가지고 돌아간다. 서리라고 하지만, 마을의 악동들이 남의 곡식, 과일,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을 뜻하는 원조 서리와는 사뭇 다르다. 어디까지나 빈부 간의 물물교환 형태이니 서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부상조의 정감 어린 면도 있었다.
-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지은이 홍인희 - 발행처 교보문고 - 발행일 2011년 5월 30일 초판 1쇄 - p94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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