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스크랩]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

산들행 2014. 12. 19. 17:53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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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일반 
글쓴이 : 한겨레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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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

 

차에 관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홍차의 샴페인'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다르질링이 원래 인도 자생종이 아니라, 중국 차를 히말라야 다르질링 지역(사진)에 이식해서 만들어진 품종이라는 거다. 캠벨이라는 영국인 의사가 카트만두에서 다르질링 지역으로 전근을 가면서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중국 차 씨앗을 훔쳐다 숙소 근처에서 재배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가져온 씨앗이 고산지대에서 퍼져 유명한 산지가 되고, 그 덕분에 우리도 다르질링의 향기롭고 화려한 맛을 즐길 수 있다니 참 재미있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헐벗고 지내던 백성들이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던 이야기도 떠오른다.

 

귤화위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어느 씨앗이 어떤 땅에 심기느냐에 따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귤의 원산지는 또 다른 유명 홍차 산지이기도 한 인도의 아삼 지역이다. 거기서 동쪽으로 퍼진 귤은 만다린이 되었고 서쪽으로 퍼진 귤은 탄제린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인 품종인 진판델은 토착 품종으로 알려져왔지만 사실은 이탈리아에서 건너갔다고 한다. 요즘 각광받는 카르미네르는 원래 프랑스 품종이었지만 프랑스에선 멸종되었고 칠레에 건너가 명성을 얻게 된 케이스다.

 

세계 최대 커피 산지인 브라질도 원래 커피가 나는 곳은 아니었다. 최초의 커피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고, 이슬람 문화권에서 즐기다가 조금씩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브라질에 커피가 처음 이식된 것은 1727년이다. 자메이카의 유명한 커피인 블루마운틴은 일본 자본이 이식돼 살려낸 종이다. 한때 '커피의 황제'로 불리다 과다 생산과 품질 저하로 고전한 블루마운틴에 1969년 일본인들이 엄청난 자본을 쏟아부어 전량을 사들였고, 이후 엄격한 품질관리로 커피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되찾게 되었다.

 

일본에 이식되는 것들은 곧바로 일본화된다. 일본식 카르보나라, 명란 파스타 등이 그렇고 위스키에 물을 많이 부어 마시는 미즈와리도 그렇고 브라질의 보사노바도 일본식 보사노바로 꽃핀다. 반대로 브라질 사람이라면 부자든 걸인이든 한 켤레씩은 갖고 있다는 국민 쪼리 '하바이아나스'는 발가락을 끼워 신는 일본의 게다가 브라질로 이식된 결과물이다. 브라질 게다인 하바이아나스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어,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 여름이면 불티나게 팔린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문화의 모든 것은 이식되고, 그 땅에서 뿌리내려 변화하고, 다시 전파된다.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부글부글 끓는 시대다. 어느 의사의 품에 실려 히말라야로 건너갔다는 몇 알의 씨앗을 생각해본다. 먼 훗날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게 될 그것들을.

 

김하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한겨레21 | 입력 2014.12.19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