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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의 시대
18세기 말, 영국 해군 수를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적군의 총탄이 아닌 괴혈병이었다. 오랜 기간 배 위에서 생활했던 수병(水兵)들은 비타민 C가 부족해 생기는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영국군은 식량공급위원회를 구성했다. 병사들의 식단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주메뉴는 단단한 밀가루 비스킷, 소금에 절인 고기와 맥주였다. 여기에 오트밀이나 죽으로 만든 완두콩, 버터, 양념 등이 추가됐다. 하루에 4000~5000칼로리가 제공됐다. 수병들은 비타민 공급을 위해 감귤즙을 마셨다. 일반 영국식 식사와 다름없는 식단이었다. 선원들은 건강해졌다. 덕분에 배가 바다에 머무는 시간은 1700년 2주에서 1세기 만에 3개월로 늘었다. 영국군은 네덜란드, 프랑스 해군을 제치고 제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탐식의 시대》는 요리와 음식의 변천 과정을 통해 인류의 문명을 살펴본다. 저자는 페르시아 로마 영국 등 제국의 흥망성쇠,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 등 주요 종교의 탄생과 확산,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하기까지 역사를 '식문화의 진화 과정'이란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다.
곡물은 기원전 1000년경 무렵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 국가, 군대를 지탱하게 했다. 곡물은 중량 대비 영양소 비율이 가장 높았다. 또 당시 주식이던 뿌리채소는 땅에서 캐내면 얼마 못 가 썩었지만 곡식은 오랜 기간 저장해두고 먹을 수 있었다. 부자들은 곡식으로 부를 축적했고, 이는 권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요리의 역사는 1880~1914년에 가장 큰 전환기를 맞는다. 봉급생활을 하는 중산층과 임금을 받는 노동 계층이 지방과 설탕이 풍부한 중급 요리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음식은 고급 요리와 하급 요리 둘뿐이었다. 모든 시민이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점차 당연해졌다. 서구에서 중급 요리는 투표권 확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 식품가공산업의 발달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요리를 먹기 위해선 음식에 드는 비용이 낮아져야 했다. 농업이 지역별로 전문화됐고, 곡물이 세계적으로 이동하면서 저렴해진 수송 비용과 효율이 향상된 농법이 전 지구적인 상업 연결망과 결합됐다.
이제 현대인은 세계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세계 120개국에 진출한 맥도날드에 가면 미국인이 먹는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에선 불고기버거, 도쿄에선 쌀로 빵을 만든 라이스버거, 방콕에선 타이 바질을 곁들인 맥포크 버거, 델리에선 양고기 버거, 파키스탄에선 샤미 케밥 버거를 먹을 수 있다. 누구든 많지 않은 돈을 내면 구운 소고기에 신선한 상추와 토마토를 얹은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에 밀크셰이크를 먹을 수 있다. 100년 전에는 세계 최고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영양학자들은 설탕, 기름, 지방이 풍부한 현대인의 식단을 두고 건강을 걱정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중급 요리를 오로지 영양문제로 진단하면 그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대 요리가 건강과 평등 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산업화된 식품 가공의 혜택을 아직까지 절구를 찧고 있는 세계 빈민층에게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레이철 로던 지음 /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584쪽 / 2만4000원
한국경제 | 김인선 | 입력 201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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