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안 끓여도 / 솥이 하마 녹슬었나 / 보리 누름철은 / 해도 어이 이리 긴고 / 감꽃만 / 줍던 아이가 / 몰래 솥을 열어보네
이영도의 〈보릿고개(麥嶺)〉라는 시조다.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는 춘궁이의 어려움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일제 치하의 우리 농민들은 양식을 착취당해 1년간 먹을 양식을 비축할 수 없었다. 가난한 농촌에서는 4~5월경이면 양식이 거의 떨어져 보리가 익기만 기다렸는데, 이 시기를 가리켜 보릿고개라 했다.
춘궁기가 되면 사람들은 산나물이나 솔잎, 송기(소나무의 속껍질) 따고, 냉이나 쑥, 달래 등의 푸성귀를 뜯어다 약간의 곡물과 섞어 죽을 끓여 겨우 굶주림을 면했다. 절반 굶다시피 하는 농가에서는 보리가 누릇누릇 익을락 말락 하면 베어다 덜 여문 곡식을 쪄서 손으로 비벼 양식을 마련했는데, 그것이 햇보리다. 눈물 겨운 햇보리로 밥을 지으면 그래도 구수한 맛이 났다. 유럽에서도 한때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이용되어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봄에 자라 여름에 열매를 맺는 보리는 봄 기운(溫性), 여름 기운(熱性), 가을 기운(惊性), 겨울 기운(寒性)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가을에 파종해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하는 가을보리를 좋은 것으로 보았다.
이미 5,000년 전부터 보리는 활력과 정력 식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로마의 검투사들은 체력 보강을 위한 보리를 즐겼다는 이유에서 '보리 먹는 사람들(Hordearil)'이라 불렸을 정도다.
달래뿌리 같이 허연 / 무주할머니 치마폭에선 / 늘 된장 냄새가 났다. / 봄이면 비둘기빛 새벽에 산으로 가서 / 노을녘에야 산나물을 이불짐 이듯 이고 와 / 머얼건 나물죽 한 그릇 먹기도 어렵던 / 당신의 보릿고개 / 회약 먹은 듯 노랗던 / 배고팠던 날들을 애기했었다. // 확독에 보리쌀 갈아 지은 밥 / 밥바구리에 그득하게 펴 놓아도 / 밥티도 주어 먹던 할머니........ 탱자꽃 울타리 병풍처럼 두르고 /보리밥도 달디 달게 먹던 때가 그리운 날 / 봄 탄다 탓하며 밥을 푼다 / 하얀 쌀밥을 푼다.
먹는 것이 풍족해진 지금, 사람들은 향수와 건강을 위해 보리밥을 먹으러 간다.
- 식탁위의 보약 건강음식 200가지
- 김정숙 지음
- 펴낸곳 아카데미 북
- 초판 1쇄 발행 2008년 4월 5일
- p168 ~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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