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밀, 기타 맥류

부과 특권의 상징, 밀가루와 빵

산들행 2014. 8. 31. 11:35

곡물은 신이 태초부터 내려 준 선물이다. '땅은 그 스스로 모든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영양을 주며, 번식력을 가진 씨앗을 다시 받아들인다.' 씨앗이 싹트고, 식물이 태어나서 죽고, 그 열매가 땅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것은 모두 부활을 뜻한다. 고대에는 이런 과정을 생명의 신비과 영원한 계절의 순환으로 이해했으며, 그래서 자연을 어머니로 여겼다.

 

지난 6천 년 동안 밀은 국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빵'이 돈을 뜻한다는 말이 생겼고, 호메로스는 인간을 가르켜 '밀가루를 먹는 동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과거, 계급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먹는 음식이 뚜렷이 나뉘어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이른바 '좋은 빵'과 '나쁜 빵'을 그 색깔과 특성으로 구분했다. 그중 농부들이 먹는 빵은 껍질이 있는 곡물 가루로 만들어 색깔이 진하고, 귀리나 기장 같은 수확량이 많은 곡물을 사용하여 부풀지 않은 '무거운 빵'이었다. 밀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반면 수확량은 적어서 당시에는 밀가루로 만든 하얀 빵을 아무나 먹을 수 없었다. 상인이나 잘사는 수공업자들이 먹던, 비록 덜 고급이지만 체에 친 곡물 가루를 원료로 만든 중간색을 띤 이른바 '도시빵'도 있었다.

 

과거에는 긴 여름 해에 쌀과 보리가 동나면 별미로 밀가루나 메밀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 먹었다. 고려시대만 해도 국수는 상류층의 별미로, 선택받은 사람만 먹을 수 있었으며, 칼국수 역시 품이 많이 드는 사치스런 여름 음식으로 여겨졌다. 《고려사》에 의하면, 송나라를 왕래하던 고려의 스님들이 국수를 도입했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상류 사회의 제사 음식이나 잔치음식으로 번져나갔던 것으로 추측된다.

 

부와 특권의 상징에서 이제는 누구나,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대중의 음식이 된 밀. 허나 배고픔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병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먹을 거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뽀얀 밀가루를 보고 있노라면 '최대의 자연 파괴는 고속 정미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 계속 머리를 친다.

 

밀가루는 열량원인 데다 단백질 함량도 쌀(6.5g)의 2배에 달하지만 필수 아미노산 함량은 적은 편이다. 그리고 비타민 A, C, D는 전혀 들어 있지 않으므로 동·식물성 단백질이나 채소를 함께 섭취해야 한다.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밀가루의 산도가 주로 인산화물과 약간의 유기산이기 때문이다.

 

 

 

- 식탁위의 보약 건강음식 200가지

- 김정숙 지음

- 펴낸곳 아카데미 북

- 초판 1쇄 발행 2008년 4월 5일

- p166~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