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모는 아직 푸르고 보리도 거두려면 더 있어야 할 때, 먹을거리가 없어 굶주리는데 오뉴월 해는 길기만 하다. 1년 가운데 봄철 이런 때를 가리켜 보릿고개라 이른 적이 있다. 1950~1960년대 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식량사정이 안 좋아 굶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대관절 보릿고개란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맨 먼저 보이는 기록은 《세조실록》11권, 4년(1458) 2월 7일의 춘기(春봄 춘 饑 주릴 기)인데 '봄의 가난할 때'라는 뜻이다. 또《명종실록》11권에는 궁춘(窮다할 궁 春봄 춘)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궁춘이 《조선왕조실록에》에 가장 많이 나온다. 그밖에《명종실록》에는 춘빈(春貧가난할 빈), 《현종실록》춘기(春飢주릴 기), 《숙종실록》의 춘기근(春飢饉흉년들 근)과 춘궁(春窮), 《고종실록》궁절(窮節)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특히 보릿고개라는 이름에 딱 들어맞는 맥령(麥보리 맥 嶺재 령)은 《정조실록》에 보인다. 일제강점기 기록인 1931년 6월 7일 《동아일보》의 〈300여 호 화전민 보릿고개를 못 넘어 죽을 지경〉이라는 기사를 보면 당시에도 보릿고개는 넘기 어려웠던 듯 하다. 이를 보면 보릿고개는 1950~1960년대에 생기거나 그때 처음 불린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 시대부터 쓰이던 "맥령"을 우리말 "보릿고개"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 김영조 지음
- 펴낸곳 : 인물과 사상사
- 2011년 10월 9일 쇄 펴냄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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