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원산지가 남미 안데스 산맥으로 감자와 같지만, 유럽의 평판은 감자와 달리 매우 우호적이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감자에 비해 재배조건이 비교적 까다롭고 귀해 상류층의 부의 과시물로 여겼는가 하면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맛까지 갖추고 있어 이른바 '귀족 식물'로 대우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영조 때 예조참의 조엄이 통신정사로 일본에 가던 중 대마도에서 발견해 국내로 반입했다. 그후 자신이 부사를 역임한 부산 동래에서 최초로 재배에 성공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조엄은 당시 기행문인 《해사일기》에서 고구마의 유래와 자신의 소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마도에 감저라는게 있는데 '효자마(孝子麻, 코우시마)' 또는 그곳 말로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잘 퍼진다면, 고려 때 들어온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우리 백성을 매우 이롭게 할 것이다. 동래에서 잘 자라서 제주도 등 여러 섬으로 전파되어 나갔으면 좋겠다.
원주 출신인 조엄은 풍양 조씨 명가의 후손으로 애민정신 때문인지 고구마를 처음 접하는 순간 이를 조선으로 가져다 심으면 굶주린 백성이 춘궁기를 넘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사실 그전에도 이미 두 차례나 일본 통신사가 다녀간 바 있고, 부산과 대마도 간의 상호 교류 및 무역을 하던 세경선이 수시로 왕래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구황작물로서 고구마의 진가를 주목하지 못한 듯하다. 이 때부터 고구마에는 '조엄이 가져온 마'라는 뜻에서 '조저(趙藷 사탕수수 저, 고구마 저)'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민초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던 한 관리의 안목과 열정이 조선사회의 식문화를 한단계 높이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지은이 홍인희
- 발행처 교보문고
- 발행일 2011 년 5 월 30 일 초판 1 쇄
- p107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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