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추어탕은 지방뿐 아니라 한양에서도 '거지 음식'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이 있다. 당시에는 '꼭지떼'라 불린 거지패들이 있었고 그 무리의 왕초는 '꼭지딴'이라고 불렸다. 청계천, 서소문, 복청교, 새남터 꼭지딴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조직에 속하지 않는 일반 거지들과는 달리 나름의 품위와 규칙을 지켜가며 생활했다. 그중 하나가 '밥을 구걸하더라도 반찬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당번 거지들이 밥을 얻으러 간 동안 남아있는 비번 거지들은 반찬용으로 자신들이 살던 개천가 등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였다. '꼭지딴 추어탕', '꼭지딴 해장국'으로 알려진 그 음식은 더없는 보양식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자극적인 냄새에 끌린 행인들이 급기야 돈을 주고 사먹게 되었다.
'꼭지떼들이 먹는 추어탕, 해장국 맛이 죽인다더라'는 입소문이 지체 높은 양반들의 귀에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중국의 고서인 서긍의 《고려도경》, 이서진의 《본초강목》은 물론이요 허준의 《동의보감》, 서유구의 《전어지》등 우리 문헌에서도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거나 '숙취에 좋고 양기를 보충해주어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는 기록은 물론 '일주일만 먹어도 정력이 되살아난다'는 속설까지 낳았다. 그러나 양반의 체면에 거지들이나 먹는 비천한 음식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가 볼세라 마나님들은 한밤중에 추어탕을 사랑채로 몰래 가져갔다. 이렇게 추어탕은 남몰래 영감에게 먹이던 '사랑의 묘약'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국 어디서나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는 데다 요리법도 비교적 간단한 서민 음식이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각 고장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요리 형태가 전해온다. 서울·경기도식, 전라도식, 경상도식, 경기도식등이 그것이다. 이중 서울·경기도식은 다른 곳과 달리 삶은 미꾸라지를 으깨거나 갈지 않고 통째로 사용해 특별히 추어탕이라는 이름 대신 '추탕'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 '추두부탕'이라는 색다른 형태가 있다. 미꾸라지와 흰두부를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 미꾸라지가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를 피해 두부속으로 파고들어 잔뜩 약이 오른 채 익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초간장에 찍어 먹거나 갖가지 양념과 함께 탕으로 끓이기도 한다. 추두부탕은 '초선두부'라고도 불리는데, 후한 말 권력 실세였던 동탁이 중국 4대 미인 중 한명으로 불리는 초선의 미색에 빠져 스스로 명을 재촉했다는 고사에 빗대어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두부는 초선의 백옥같은 피부를, 미꾸라지는 교활한 동탁을 상징한다.
-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지은이 홍은희 - 발행처 교보문고 - 2011년 5월 30일 초판 1쇄 - p89 ~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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