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작물

불로장생의 불로초인 참깨는 역사적 뇌물이다.

산들행 2014. 10. 25. 08:19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식품과 약초를 놓고 불로초라고 주장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의 묘약이라고 믿었던 식품이 바로 참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참깨를 불로장생 식품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신화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참깨는 오랫동안 불로초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18세기 초반인 조선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참깨는 신선들이 먹었다는 선약(仙藥)에 가까운 식품이라고 극찬을 해놓았다. 산림경제에 따르면 뽕잎가루와 참깨를 꿀에다 섞어 선약을 제조하는데, 석달동안 복용하면 몸에서 윤기가 돌고 반년을 먹으면 정력이 솟구치며 모든 병이 사라진다고 적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 때 양나라에 살았던 의학자이며 도교의 도사로 신선이 되기를 추구했던 도홍경은 참깨가 여덟가지 곡식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신선들은 참깨로 밥을 지어 먹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오래 산다"고 했다. 고대 아랍에서도 참깨는 불로초로 신들이 먹는 식품이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앗시리아의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 세상을 만들기 전에 참깨로 만든 술(Sesame wine)을 마셨다고 한다. 참깨가 천지창조의 작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음식이었고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신이 드셨던 식품이었던 것이다. 고대 힌두교 전설에서도 참깨 씨앗을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했으니 고대 인도에서도 참깨를 불로초로 여겼다. 신화시대를 지나서도 참깨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참깨가 발견된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또 옛날 그리스 병사들은 전쟁터에 갈때 참깨를 전투식량으로 지참했는데 적은 양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참깨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이다. 동양에 참깨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 1 ~ 2세기 무렵이다. 중국 한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이라는 외교관이 서역 그러니까 지금의 중앙 아시아에 있는 흉노족 국가를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가져왔다고 한서 서역전에 나온다. 아랍의 참깨가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으로 전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 언제 참깨가 전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고려에서도 참깨를 재배한다는 기록이 있고 해동역사에서도 고려에는 호마(胡麻) 즉 참깨가 많다고 했다. 중국에는 한나라 때 전해졌고 고려 때 참깨를 많이 재배한다고 기록에 나오니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무렵에 참깨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역사의 기록에도 참깨는 귀중한 작물로 나온다. 요즘은 뇌물로 떡값을 주지만 조선시대 때는 참깨를 뇌물로 건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문종 일년 참깨 열말을 뇌물로 받은 자가 있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 때는 임금의 장인인 부원군이 자신의 하인이 참깨 두 섬을 뇌물로 받았다는 고발이 들어왔는데 사실과 다르니 혐의를 벗겨 달라며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중종 때 황침이라는 자가 당시의 세도가였던 김안로에게 청탁해 충청병사가 되자 참깨 20말을 뇌물로 보냈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록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문종 때는 뇌물로 바친 참깨의 양이 열 말 이었는데 성종 때는 두 섬을 뇌물로 바친 것으로 나온다. 중종 때는 스무 말 그러니까 두가마를 뇌물로 바쳤다가 문전 박대를 당했다고 했다. 뇌물의 액수는 받는 사람의 지위와 청탁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수치상으로 보면 참깨의 경제적 가치가 빠른 속도로 평가절하된 것 같다.  

  

-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 지은이 윤덕노

- 펴낸곳 청보리미디어

- 초판 3쇄 발행/2011년 12월 8일

- p170 ~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