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대 중반을 넘어선 노인 영조가 어느 날 오랫만에 잘 먹었다. 영조가 말했다.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은 네 가지 별미라. 이것들 덕분에 잘 먹었다. 이로써 보면 아직 내 입맛이 완전히 늙지는 않았나보다"(승정원일기,1768.07.28). 영조는 1749년 7월 24일 처음 고추장을 언급했다. 이후 영조는 고추장 사랑에 빠졌고, 고추장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지경이 되었다.
영조는 조종부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좋아했다. 심지어 조종부가 죽고 5년이 지난 후에도 그가 화제에 오르자 고추장을 떠올렸다(승정원일기, 1751 윤09.18, 1754.11.20, 1761.08.02). 참고로 밝히면 조종부의 본관은 순창 조씨이다. 흔히 말하는 '순창고추장'의 연원이 조종부 집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고추의 직접적인 한자 표기라 할 수 있는 고초는 1749년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호초, 번초, 남초, 당초 등 고추와 유사한 식물의 이름이 이전에도 다수 나오지만, '고추'는 단 한번도 보이지 않는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은 18세기 중반 조선 입맛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은 고추장의 매운맛과 감칠맛에 중독되어갔다.
- 18세기의 맛 (정병설)
그렇다면 조종부의 고초장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숙종의 어의를 맡았던 이시필 (1657~1724)이 지은 책으로 알려진 소문사설의 '순창고초장조법'에서 짐작할 수 있다.
"쑤어 놓은 콩 두 말과 흰 쌀가루 다섯 되를 섞고, 고운 가루가 되도록 마구 찧어서 빈 섬속에 넣는다. 1, 2월에 이레 동안 햇볕에 말린 뒤 좋은 고추가루 여섯 되를 섞고, 또 엿기름 한 되, 찹쌀 한 되를 모두 가루로 만들고 진하게 쑤어 빨리 식힌 뒤, 단간장을 적당히 넣는다. 또 좋은 전복 다섯 개를 비스듬히 저미고, 대하와 홍합을 적당히 넣고 생강을 조각내어 보름 동안 항아리에 삭힌 뒤, 시원한 곳에 두고 꺼내 먹는다. 내 생각에 꿀을 섞지 않으면 맛이 달지 않을 텐데 이 방법은 실리지 않았으니 빠진 듯하다"
65세가 된 영조는 여러 의관과 대화에서 가을보리밥, 고초장, 그리고 즙저가 입에 잘 맞는다고 하였다. 영조가 꼽은 고초장은 고추장이다. 즙저는 고초장과 맛이 다르지만 짠맛이 나는 장아찌다. 75세의 영조는 송이, 생전복, 어린 꿩고기와 함께 고초장이 네가지 별미라고 말했다. 사실 고추장은 결코 영조의 건강식이라고 할 수 없다. 고추장의 매운맛은 식욕을 돋우고 전분과 칼슘의 흡수율을 높여준다. 본래 담백한 음식을 즐겨 먹었던 영조가 50세가 넘으면서 고추장을 비롯한 즙장과 같이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었던 이유는 입맛을 잃어버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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