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손수 담근 고추장
"고추장 작은 단지를 하나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거다. 내가 직접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 않았다."
이 편지를 쓴 주인공은 《열하일기》의 저자인 연암 박지원이다. 그는 명문가인 반남 박씨의 일원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야인으로 살다가 55세의 늙으막에 지금의 함양인 안의 현감으로 부임했다. 부인 이씨는 이미 4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재혼하지 않고 자식들을 살뜰히 챙겼다. 편지는 아주 짧지만 두 아들에게 자신이 만든 장을 보내면서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라는 글귀에서 박지원의 걱정스러움과 뿌듯함이 넘처난다.
박지원의 자식들도 요즘의 무심한 자식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고추장을 받았지만, 감사는 커녕 잘 받았다는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이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육포)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거 같더라.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재담꾼이자 날카로운 풍자로 세상을 조롱했던 박지원이지만 그도 자식들 앞에서는 짜증 많고 잔소리 많은 아버지에 불과했다. 이제 예순이 다 된 홀아비 노인네가 장독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장을 담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 요리하는 조선남자
- 지은이 이한
- 발행처 청아출판사
- 초판 2쇄 발행 2016. 1. 22.
- p249 ~ 254.
연암 박지원(1737 ~ 1805)의 고추장에 대한 사랑은
"바라보니 그대는 흥이 나면 한번 찾아와, 이 동산에 가득 찬 죽순을 나물로 데쳐 먹고 개천에 가득한 은어를 회 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맑은 못의 곡수 위에 참말로 술잔을 띄워 흘려보시지요. 그러면 진나라 제현의 풍류만 못하지 않을 것이며, 계축년의 수계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라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 조선의 생태환경사
- 글쓴이 김동진
- 펴낸곳 도서출판 푸른역사
- 2017년 2월 28일 초판 2쇄 발행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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