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함께 향신료의 왕 후추의 육로 공급이 끊기면서 대륙 전역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지중해 여러 민족 국가의 경제는 후추를 잃으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이미 알려진 세상과 미지의 세계에서 이 조미료의 대용품을 찾고자 신속히 바다의 탐험가들을 파견했다. 1490년에 마침내 간절히 바라던 그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칠리고추였다.
스페인의 탐험가들은 남아메리카 지역 대부분을 적은 병력으로 단기간에 정복하고 금괴와 파인애플, 땅콩, 감자 및 새로운 이름을 얻은 고추 등 귀중한 채소들을 싣고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추는 금세 유럽 전역과 열대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1540년대 초에 이르러 인도에 이 작물이 전파되었고, 400년이 흐르자 한때 후추를 가장 많이 수출하던 이 나라는 고추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중 하나가 되었다.
칠리고추의 등장은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니콜라스 컬페퍼(Nicholas Culpeper, 17세기 영국의 초본학자이자 의사)는 새뮤얼 존슨이 "최초의 약초와 몸에 유익한 식용 식물을 찾아 온갖 숲을 누비고 산을 오른 인물"로 칭한 사내이다. 또한 존슨은 그를 일컬어 '후세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칠리고추를 기니 페퍼, 카엔 또는 버드 페퍼라고 부르던 컬페퍼는 이 식물의 가치를 알리고자 저서 《약용식물전집 Complet Herbal, 1653》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는 한편, "강렬한 맛을 내는 이 열매의 지나친 사용"을 미리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기니 페퍼가 화성의 기운을 담은 식물이라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껍질 혹은 몸통에서 발생하는 증발 기체가..... 콧구멍을 지나 머리로 올라가서 뇌를 찌른다. 격렬한 재채기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날카로운 기침을 일으키고 심한 구토를 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을 불길에 던져 넣으면 "눈물을 쏟게 하는 고약하고 불쾌한 기체"가 발생한다고 밝히는 한편 고추를 먹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며 신장 결석 배출, 부종 완화, 산통 경감, 부스럼과 주근깨 제거, 피부 연화, 독충이나 짐승에 의한 독기 제거, 구취 제거, 치통과 히스테리 및 기타 여성 질환 치료와 같이 고추가 주는 이로움을 글로 남겼다. 한미디로 말해서 고추는 기적의 치료제이자, 후추의 빈자리를 메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붉고 매콤한 대리자였다.
- 식물, 역사를 뒤집다. 문명을 이끈 50가지 식물
- 지은이 빌 로스 / 옮긴이 서종기
- 발행처 도서출판 예경
- 초판발행 2011년 8월 16일
- p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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