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저녁 바다는 거칠었다.
인광의 칼날들이 어둠 속에서 곤두서고 쓰러졌다.
캄캄한 바다에서 칼의 떼들이 부딪혔다.
물보라가 수영 안마당까지 날아들었다.
섬도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연안의 읍진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서 닿을 수 없이 멀리 보였다.
밝는 날 녹진, 금갑진, 벽파진, 남포, 가리포가 그 오목하고 잘룩한 포구에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배를 끌어올려 놓고 종일 종사관 김수철의 복명 보고서를 읽었다.
김수철이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진도 구기자술 한 되와 마른 가자미를 가져왔다.
김수철과 늦게까지 마셨다.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는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담대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입이 무겁고 눈썰미가 매서웠으며, 움직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김수철은 졸음을 참고 반듯이 앉아서 핥듯이 마셨다.
---수철아, 읍진이 다 무너지는 것이냐?
---본래 무너져 있던 세상입니다.
---수철아, 죽지 마라. 명령이다.
---네 나으리, 읍진에 무 싹이 올라오고 있으니 . . . . 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김수철을 내 방에 재웠다.
보름 만에 귀임한 김수철은 눕자 마자 코를 골았다.
새벽에 김수철이 이불을 걷어찼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동틀 무렵에 코피를 쏟았다.
종을 불러 피를 닦게 했다.
구들이 식어 불을 더 때게 했다.
바다는 새벽까지 길길이 뛰었다.
(p132)
우수영 함대의 전과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적들은 빠르게 달아났다.
안위와 송여종은 몸이 달았다.
적의 속도는 월등히 빨랐다.
적은 덤벼들지 않고 돌려서 달아났다.
<중략>
안위는 전령 편에 진도 벽파진에서 잡히는 전복과 도미 몇 마리를 보내오곤 했다.
진도 구기자술도 몇 병 보내왔다.
나는 돌아가는 전령 편에서 삶은 개 대가리 한 통과 둔전에서 거둔 약초를 보내주었다.
(p274)
- 칼의 노래(장편소설)
- 지은이 김훈
- 펴낸곳 생각의 나무
- 개정판 25쇄 발행 2009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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