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은 인류와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특징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다. 가령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언어, 문화 같은 특징들은 오직 인간에서만 발견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물행동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런 특징들이 비록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동물에게서도 속속 발견되었다.
「요리 본능(Catching Fire)」의 저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ham)은 현생인류와 동물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가 불의 사용과 불을 이용한 요리라고 주장한다.
리처드 랭엄은 불을 이용한 요리가 인류 진화에 미친 혁신적인 영향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동물이 먹이를 소화시킬 때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요리는 음식을 우리 몸 밖에서 미리 소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체내에서의 소화 과정이 그만큼 간단해진다. 그러므로 같은 식재료라도 날것으로 먹을 때보다 요리를 해서 먹을 때 훨씬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불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게 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크게 확장된다. 열을 가하면 독소가 파괴되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먹기 어렵거나 섭취가 불가능한 식재료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곡물이다.
쌀과 밀 같은 곡물은 식물의 씨앗으로서,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날 때까지 발아가 멈춰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부패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장기간의 저장이 가능한 이유는 곡물에 자연적인 살충제와 방부제가 듬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곡물을 날것으로 먹을 경우엔 독소 때문에 배탈이 나게 된다. 곡물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을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배탈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불을 이용하여 요리하면 곡물은 아주 훌륭한 음식이 된다. 곡물 안에 들어 있는 독소는 분해되어 더 이상 우리 몸에 해를 끼치지 않고, 곡물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은 높은 열량을 가진 에너지원이 된다.
불을 이용하여 곡물을 음식으로 만든 사건은 신석기시대에 일어났다. 이 기념비적인 변화를 우리는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른다. 신석기 혁명은 이후 '농업혁명'으로 이어졌고 그로부터 현재 우리의 생활방식, 즉 정착생활과 곡물에 의존한 식생활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식사와 관련된 우리의 모든 신체적 특징은 야생의 먹이를 그대로 섭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요리한 음식을 먹기에는 적당한 구조다. 요리는 우리와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동시에 현대 인류의 삶과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 모두는 요리하는 인류, 즉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다.
- 야외생물학자의 우리 땅 생명 이야기 - 글 장이권 - 펴낸곳 뜨인돌출판(주) - 초판 1쇄 발행 2015년 12월 28일 - p341 ~ 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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