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치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배추와 고추의 등장이다. 젓갈을 사용하게 된 것도 맛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지만, 젓갈을 마음놓고 사용하게 된 것도 결국은 고추 덕택이다. 배추는 13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수입되어 14세기 조선 건국 이후 김치 재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한편 음식학자들은 이 땅에 고추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은 높은 소금값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고추는 부패를 막는 데 큰 구실을 하므로 소금을 그 만큼 적게 써도 김치를 만들 수 있다. 계기야 무엇이든 고추는 후추의 매운맛을 대신해 주고 소금 양을 줄여주는 한편, 맨드라미를 사용해 내던 붉은 빛깔까지 더 선명하게 낼 수 있는 데다 맨드라미보다 영양과 약리효과도 뛰어났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고추가 김치에 들어감으로써 김치는 다른 채소절임류와는 확연히 다른, 진짜 김치로 탄생하게 되었다. 고추를 적극 활용하게 되면서 젓갈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추를 김치에 사용하게 된 것은 이처럼 비싼 소금값과 후추 값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김치의 질을 높여 주었다.
지금처럼 붉은 고춧가루 버무린 김치가 나오게 된 배경 역시 소금 부족 때문이었다. 김치가 빨리 시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소금이 많이 필요했는데 소금은 비쌌다.
뒤늦게 들어온 고추를 김치에 넣을 생각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푸른 고추를 빨갛게 말려 가루를 내어 김치에 붉은 색깔을 낼 생각을 한 것은 한국인의 위대한 창조력이다.
고춧가루는 소금이 부족해도 김치가 덜 시게 만들어주고 영양도 풍부한데다 빨간색까지 내준다. 그전까지 붉은색 맨드라미를 이용해서 그리 선명한 빛을 띠지 못했다. 소금 부족과 붉은 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고춧가루를 응용하면서 김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부족함 때문에 이 정도의 발명품을 얻었다면, 부족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음식이 가진 역설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새로운 재료로 대체하고, 어울리지 않는 재료도 잘 골라서 조합하며, 심지어 말아먹어도 맛나게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요리의 창조 정신 아니겠는가?
<우리는 왜 비벼먹고 쌈 싸먹고 말아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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