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 시기의 단서를 잡는 고추와 느르미
고조리서를 보다 보면 편찬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고문헌학자들이 종이의 재질이나 서체 등을 확인하여 편찬 시기를 가늠하지만, 기록된 음식 내용을 보고도 시기를 판단해볼 수 있다. 이때 가장 많이 적용되는 것이 고추의 사용 여부와 느르미 조리법이다.
고추는 임진왜란(1592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래되었다고 알려졌다. 이수광이 집필한<지봉유설(芝峰類說)>(1613년)에 고추를 '남만초(南蠻椒)'라고 소개하면서 일본에서 온 독이 있는 식물이라며 '왜개자[倭芥子]'라 부르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막에서는 소주와 함께 팔았는데, 이것을 먹고 목숨을 잃은 자가 적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아, 지금처럼 식품으로 이용되지 않았을 듯하다. 1766년에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고추 재배와 고추장 담그는 법이 나와 고추가 조리에 본격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근거로 편찬 연대를 알 수 없는 고조리서에 고추가 사용되었다면 1700년대 후반 이후의 조리서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느르미는 <음식다미방>(1670년)에 나타난 대구껍질느르미, 동아느르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700년대까지는 재료를 찌거나 구워서 익힌 다음 밀가루나 녹말 등으로 즙을 걸쭉하게 만들어 끼얹는 조리법을 뜻했다. 1800년대부터는 이런 누르미가 없어지고 누르미, 누름적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익힌 재료를 꼬치에 끼우거나 그것에 옷을 입혀서 지지는 오늘날의 누름적으로 바뀌었다. 이것을 근거로 느르미라는 음식이 밀가루즙이나 장국을 끼얹는 방법으로 소개되어 있으면 그 책의 편찬 시기를 1800년대 이전으로 추정한다.
- 음식고전 - 한복려, 한복진, 이소영 지음 - 퍼낸곳 (주)현암사 - 초판 2쇄 발행 2017년 7월 15일 -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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