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조선시대 왕이 먹었던 채소

산들행 2017. 8. 12. 17:46

조선시대 최고의 음식은 아무래도 궁중음식일 것이다. 실제 조선시대 궁중음식은 주로 진연이나 진찬을 기록한 '의궤'를 통해서 궁중 잔치음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잔치음식에서 채소는 중요한 음식 재료가 아니었다. 나물 정도가 상에 올라갔다. 아무래도 귀한 식재료인 동물성 식품이 주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궁중의 일상식으로도 채소를 많이 먹었을까? 왕실의 일상식을 볼 수 있는 기록은 정조가 1795년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행차한 의식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수라상 차림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화성 행차 때 차려진 음식의 채소 식재료는 박고지, 미나리, 도라지, 무순, 죽순, 움파, 오이, 물쑥, 거여목, 승검초(당귀), 녹두나물, 동아, 겨자 순, 생강 순, 표고 등 총 15종이다. 대부분 익숙한 채소로, 특별한 채소나 나물이 등장하기 보다 움파나 무 순, 겨자 순이나 생강 순 등 싹나물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원행 당시의 계절이 봄이여서 인 듯하다. 그 외 미나리, 도라지, 오이 등 지금과 비슷한 채소를 먹었다. 그리고 반수라상(아침, 저녁으로 올리는 밥이 놓인 수라)의 채소류 음식은 김치류로서 침채(沈菜)와 담침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침채는 소금물에 담근 채소를 가리킨다. 그런데 조선시대 김치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고, 물이 자박한 형태가 많았다. 이를 '묽을 淡(담)'자를 써서 담침채라 불렀다.

 

한편,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선 왕실의 음식 메뉴인 수발기가 수백 통 남아 있다. 이를 살펴보면 주로 채소 음식임을 알 수 있는데, 각색 나물을 반드시 올리고, 각색 장과류와 김치류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각종 탕이나 찌개의 재료로도 채소를 많이 사용했다. 길경(도라지), 당귀, 서여(마), 죽순, 석이, 표고, 해태(김), 지초, 송화, 궐채(고사리), 수근(미나리) 등도 많이 이용된 채소류였다. 육식과 조화를 염두에 둔 상차림으로, 후식으로는 반드시 화채와 과일을 올렸다.

 

- 채소의 인문학

- 지은이 정혜경

- 펴낸곳 도서출판 따비

- 초판 1쇄 발행 2017년 6월 15일

- p36 ~ 38

채소의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