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콩

[스크랩] [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콩은 힘이 세다

산들행 2017. 7. 25. 22:34
[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콩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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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칼럼 
글쓴이 : 세계일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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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서 중요한 것은 국수 아닌 국물콩은 열매이자 종자이며 생명의 핵심


여름철에는 시원한 면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콩국수. 칼국수 집에서는 칼국수 면으로, 중국집에서는 자장면 면으로, 분식집에서는 소면으로 만들어주는 콩국수. 그러니까 콩국수에서 중요한 것은 국수가 아니라 콩국물이다.


콩을 6시간 물에 불리고 15분간 삶는다. 콩을 삶을 때는 6과 15라는 숫자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덜 삶기면 비리고 더 오래 삶기면 메주 냄새가 난다. 잘 삶긴 콩은 껍질을 까 믹스에 넣어 물과 함께 간다. 쫀득하게 삶긴 국수 위에 냉장 보관한 콩 국물을 붓는다. 그 위에 고명으로 어슷 썬 토마토 몇 조각, 채 썬 오이, 그리고 검정깨를 솔솔솔 뿌려주면 끝이다.


한국의 역사는 콩과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 폭압이 심화되던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 조선민족은 제대로 먹을 것이 없었다. 학병뿐만 아니라 물자와 식량까지 일왕을 위한 전쟁에 바쳐졌다. 조선반도에 남아있던 농민이든 근로봉사단으로 탄광에 끌려간 사람이든 콩깻묵을 먹기 십상이었다. 일제강점기 식량대책을 위해 일본은 조선에 조선의 생태에 가장 적합한 전통 콩 종자를 개발하게 했다. 그것이 지금의 파주 장단콩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이 먹었던 것은 콩이 아니라 콩깻묵이었다. 콩깻묵은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농사의 비료나 가축의 사료로 쓰였다. 그만큼 반도에서의 곡식과 식량 수탈이 가혹했다.


영국동화 ‘잭과 콩나무’에서 엄마는 잭에게 암소를 시장에 가서 팔아 먹을 것을 구해오라 한다. 잭은 신비로운 사내를 만나 암소를 콩 3개와 교환한다. 화가 난 엄마는 콩을 집 밖 정원에 던져버리고 만다. 다음 날 아침에 그 콩은 커다랗게 자라 구름 위로까지 뻗어간다. 잭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의 성에 당도한다. 거인이 자고 있을 때 몰래 황금알을 낳는 닭, 금화와 은화, 말하는 하프를 훔쳐 내려와 부자가 된다.


이 동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콩이 보여주는 수직상승적인 지향과 힘이다. 콩을 단지 마당에 던졌을 뿐인데 콩이 구름 위로까지 뻗어 올라가다니. ‘콩알만 한’ 것 안에 실은 무한하게 놀라운 세계가 숨어 있다. 콩이 열매이자 종자이며 생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콩이 고단백의 아이콘이 된 것도 이러한 데서 연유한다. 그 안에 영양가 높은 미래의 시간이 담겨 있다.


작고 만만해 보이는 콩알 하나 안에 담긴 수많은 비밀과 새로운 세계, 그것은 하나의 꿈이며 하나의 소용돌이다. 하나의 폭풍이다. 콩알만 한 꿈이었는데 그냥 무심히 마당에 던져버렸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거대한 나무가 됐다. 우리의 꿈은 콩처럼 우리도 모르게 자라 하늘로 뻗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콩의 생명력은 질기다. 절실하다. 생존을 위한 생명력이고 성실한 생명력이다. 강낭콩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본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그런다. “야야, 여름철엔 콩국수가 최곤겨.”

궁핍기에 조선민족을 지켜왔던 콩. 툭 마당에 던졌는데 구름 위까지 올라갔던 콩나무. 맑은 듯 텁텁하게 입 안에서 공 굴리다 넘어가는 콩국 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다. 콩국물의 눈물과 콩국물의 생명력이 한가득 몸속으로 스며들 것 같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김용희의 음식문화여행] 콩은 힘이 세다
황온중 입력 201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