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 같은 농경 관련 저서를 쓴 실학자 이익은 말년에 모든 활동을 접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보냈다. 요즈음 유행하는 귀농의 선구적 사례를 실천했던 그는 콩을 재배했다. 그의 콩 사랑은 남달라서 콩이야말로 백성에게 이로운 작물임을 책으로 쓰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 증명했다.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말년을 보낸 안산 성호장에서는 1735년 삼두회(三豆會)라는 모임이 결성된다. 이 모임은 그가 농사 지은 콩으로 콩죽과 콩나물, 된장을 만들어 이 세 가지 음식(三豆)만을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모임이었다. 그의 가족과 제자들이 모임에 참여해 소박하고 실천적인 그의 삶과 철학에 동참했다.
이익이 직접 쓴 「삼두회시서(三斗會詩序)」라는 시에는 콩에 관한 그의 생각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눈길이 담겨 있다.
곡식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벼, 보리, 콩으로 그중에서도 콩이 천하다.
하지만 굶주림을 구제하는 데는 콩만한 것이 없다.
『춘추(春秋, 5세기초)』에 벼와 보리가 없으면 '민지(憫之 : 근심할 일)'라고 했고
서리가 내려 콩이 죽지 않으면 '행지(幸之 : 다행스러운 일)라고 했다.
삼두회에 참석했던 제자 이삼환(李森煥, 1729~1814)은 「삼두회시서(三斗會詩序)」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콩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둥근 형상은 하늘의 모습을 갖추었고
누런 색깔은 땅의 덕을 구비했네
콩은 가장 서민적인 재료였다. 조선 중기의 자료에 따르면 콩의 가격은 쌀에 비해 몇 배나 저렴했다. 서민들은 저렴한 콩으로 된장을 만들고 간장을 우려내고 콩밥, 콩나물에 콩국을 먹으며 살아왔다.
- 음식강산 ②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 지은이 박정배
- 펴낸곳 (주) 도서출판 한길사
- 제1판 제1쇄 2013년 1월 30일
- 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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