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야채 재배가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옥수수, 호박, 감자 그리고 콩을 먹게 해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린 문명인들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원주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콜럼버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멕시코 구어로 신틀리(Cintli)라고 하는 새로운 작물인 옥수수(메이즈)를 들여오자 유럽인들은 스페인산 메이즈 대신 먹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쿠바에서 옥수수를 발견했는데 그 지역 원주민들은 이 옥수수를 마이시라고 불렀다.
사초과에 속하는 옥수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의 하나이다. 콘(일반 옥수수), 스위트 콘, 인디언 콘, 밀리, 통째로 구운 옥수수, 팝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 이 식물은 원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기르던 작물로, 톨텍, 아스테크, 마야, 잉카 제국뿐 아리라 새롭게 아메리카에 정착한 이방인들도 즐겨 기르는 작물이 되었다. 1810년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는 600만명 이지만 옥수수 덕분에 1세기 후에는 9,4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스페인으로 건너온 옥수수는 불과 100년도 되기 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옥수수는 신화에도 등장한다. 멕시코 신화에는 풍요의 여신인 신테우틀과 히아와타 족이 살해해서 땅에 묻혀버린 녹색 거인인 몬다민이 나온다. 몬다민의 무덤에서 자라난 옥수수를 먹은 히아와타족은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었다. (p99 ~ 102)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여러 가지 작물을 함께 심는 간작 같은 재배 기술에 능란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 의식을 치른 다음 옥수수 씨를 밭에 뿌리고 물고기나 나무의 재 혹은 근처 동굴에서 구한 박쥐의 배설물 등 비료가 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가져와 거름으로 썼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옥수수 씨를 뿌리기 전에 리마 콩이나 강낭콩 또는 핀토 콩을 미리 심었다. 이 콩은 옥수수가 자랄 때 지지대 역할도 했다. 옥수수를 심고 나면 늙은 호박이나 스쿼시 씨를 뿌리거나 기름을 짜기 위해서라면 해바라기를, 저장용 덩이줄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예루살렘 아티초크를 심었다. 제일 처음 여문 옥수수의 속대를 신에게 바칠 작물이었기 때문에 그린 콘 페스티벌 때 잔불에 구워야 했다. 나중에 여문 옥수수의 속대는 양파처럼 밧줄로 묶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오두막집에 그을린 서까래에 매달아 두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초기 정착민들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옥수수, 감자, 토마토, 후추, 고구마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매로우와 스쿼시, 펌프킨, 예루살렘 아티초크, 콩 등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일단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작물로 굶어죽는 일을 면하자 이 새로 발견한 야채들의 찬양자가 되어 앞다투어 이 야채들의 씨앗을 고국으로 보냈다.
유럽으로 건너간 아메리카 대륙의 야채들은 1700년대, 스페인 인구가 2배로 증가한 원인이 바로 아메리카 옥수수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큰 일을 해냈다. 감자도 옥수수와 비슷한 일을 해냈다. 기아에 허덕이던 아일랜드는 감자 덕분에 1750년에 300만명에 불과했던 인구 수가 병충해 때문에 감자 농사를 망치기 전인 1845년에는 800만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P148~ 149)
- 진기한 야채의 역사
- 지은이 빌로스/옮긴이 김소정
- 펴낸곳 눈과 마음
- 초판 1쇄 발행 200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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