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의외로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조리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조리서를 저술한 남성 유학자도 있었다. 음식이 건강에 중요할 뿐 아니라 제사 등 의례에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p54)
고려 말의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은 문집 《목은시고牧隱詩藁》에 술, 차, 두부 등 음식에 관한 시를 여럿 남겼다. 목은 선생은 고려시대의 소박한 미식가로 늘 거론된다. 음식 중에서도 특히 두부를 사랑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 우리나라의 두부에 대한 첫 기록을 《목은시고》(33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사가 두부를 구해와서 먹여주다(大舍求豆腐來餉대사구두부내향)라는 제목의 시다.
菜羹無味久(채갱무미구)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국만 먹다 보니
豆腐截肪新(두부재방신)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便見宜疏齒(편견선소치) 성긴 이로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眞堪養老身(진감양노신) 늙은 몸을 참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
魚蓴思越客(어전사월객) 오월(吳越)의 객은 농어와 순채를 생각하고
羊酪想胡人(양락상호인) 오랑캐 사람들의 머리 속엔 양젖 치즈(양락)인데
我土斯爲美(아토사위미) 이 땅에선 이것을 귀하게 여기나니
皇天善育民(황천선육민) 황천이 생민을 잘 기른다 하리로다.
누군가가 특별히 구해준 두부가 노인이 먹기에도 부드럽고 그 맛을 썰어낸 비계같이 맛있다는 내용이다. 원래 두부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불가의 음식이었지만 사대부들에게서도 사랑받으면서 유가의 음식이 되었다. 사대부들은 두부를 오미(다섯 가지 미덕)을 갖춘 음식이라고 칭송했다. 맛이 부드럽고 좋음이 일덕이요, 은은한 향이 이덕이요, 색과 광택이 아름다움이 삼덕이요, 모양이 반듯함이 사덕이요, 먹기에 간편함이 오덕이라는 것이다. 또한, 풍부한 단백질과 부드러움으로 콩에서 나온 우유(숙유 菽乳) 혹은 무골육 無骨肉, 즉 뼈 없는 고기라고도 했다.
목은 선생은 《목은시고》제9권에서 '두부와 토란을 섞은 반찬'을 이야기 한다.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과 곡성시중曲城侍中이 나를 찾아와서, 내가 부름을 받고 한자리에 참여했다. 인하여 좋은 일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다.
二老過從數(이로과종수) 두 노인은 수시로 들러주는데
孤生病起初(고생병기초) 나는 병석에서 겨우 일어났네
幸容陪杖屨(행용배장구) 모시길 용납해 줌은 다행이거니와
更喜接門閭(갱희접문려) 서로 이웃이 된 게 또한 기쁘네
豆腐蹲鴟雜(두부준치잡) 두부 반찬에 토란을 곁들였고
香粳吠蛤餘(향갱폐합여) 좋은 쌀은 개구리 울던 나머지로다
乾羊斟美酒(건양짐미주) 말린 양고기에 좋은 술 따를제
秋色滿庭除(추색만정제) 가을 경치는 뜨락에 가득하구나.
목은 선생은 자신을 "미나리 먹고 햇볕 쬐던 늙은 시골농부"라고 겸손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두부와 채소를 즐겨 먹고 술을 즐기며 인생을 관조하며 살았던 그를 진정한 미식가로 불러야 할 듯 하다.
- 채소의 인문학 - 지은이 정혜경 - 펴낸곳 도서출판 따비 - 초판 1쇄 발행 2017년 6월 15일 - p59 ~ 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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