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작물

조선시대 김치와 소금을 대체한 고추

산들행 2017. 8. 15. 06:18

발효식품은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전근대사회에서 먹거리를 다양하게 확보하기 어려운 추운 겨울을 지내는 데 특히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채소를 구하기 힘든 추운 겨울에 소금을 절인 채소를 발효시킨 김치를 만들어 비타민을 비롯해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했다.

조선시대 초에는 채소의 종이 오늘날과 달라서 속이 꽉 찬 커다란 배추는 구하기 어려웠고, '무'와 '동과' 등을 이용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에서 들여온 크고 실한 배추를 통해 품종이 변화되고 농업기술이 발달한 덕에 배추김치가 다양한 계층에서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쓰면 소금을 덜 넣어도 보관이 용이하고 감칠 맛이 커진다는 사실이 접목되며, 지방에 따라 젓갈과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조합이 달라졌고 각각 특색 있는 김치가 정착되었다.

더운 남쪽 지방으로 갈수록 멸치젓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맵고 짠 김치가 주를 이루었고, 추운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젓갈과 고춧가루를 적게 넣는 담백하고 순한 김치가 지역의 맛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살아보기> 에서

- 반주원 지음, 출판사 제3의공간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鼠囓紅菁(서설홍청)

<쥐가 홍당무를 갉아먹다>라는 그림으로,

오른쪽 잎사귀가 넓은 것은 배추이다.

조선시대의 배추는 지금의 속이 꽉찬 배추와는 모양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