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규경은 '번초 蕃 우거질 번 椒 산초나무 초' 를 백성들이 고추〔鄕名苦椒 향명고초〕라고 불렀다는 점을 밝히며, 고추·호박·담배가 왜란 이후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전파된 세 종류의 작물이었다고 말한다. 집필 당시보다 70~80년 전 승려와 평민이 먹기 시작한 것이 이후 누구나 일상적으로 즐기는 먹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고추장을 발명한 것은 승려들이었고,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은 평민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규경은 고추장에 대해 식욕을 돋우는 좋은 맛이고, 또한 그 가루는 구슬처럼 붉고 선명한 것이 음식 조리에 쓰이는 최고의 양념이라고 했다. 당시 사람들도 "하루라도 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고추장에 매료되었다. 국왕인 정조 역시 행행行다닐행 幸다행 행 에 나설 때면 언제나 정리소 整理所에서 고추장苦椒醬〕을 필수품으로 챙겼다(日省錄). 19세기 무렵에는 연희궁의 뜰 앞에 고추를 심어 기르는 밭(苦草田)이 만들어지기도 했다(東國輿地備考).
이와 같이 고추와 고추장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보편화하면서 고추장을 만드는 방법에도 현저한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최근까지 고추장을 만드는 방법에서 고추와 쌀의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찹쌀 등 탄수화물 성분은 엿기름과 작용하여 물엿을 생성하므로 고추장의 단맛과 장기 보존성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고추장의 사용량이 늘어난 것은 매운 맛에 적용한 입맛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이다. 동시에 단맛이 늘어난 고추장이 만들어진 것도 주 원인이다. 단맛이 매운 맛의 상당 부분을 상쇄해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고추와 찹쌀의 사용량 증가는 메주와 누룩곰팡이와 소금이 담당하던 맛과 보존 기능을 물엿과 고추가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추의 매운 맛에 점점 더 잘 적응하고, 물엿이 매운 맛을 완화시켜준다는 점을 파악하여 이를 고추장 만드는 방법에 점진적으로 적용·개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조선의 생태환경사 - 글쓴이 김동진 - 펴낸곳 도서출판 푸른역사 - 2017년 2월 28일 초판 2쇄 발행 - p 266 ~ 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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