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를 찾아 인도로 떠났던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를 헤매다가 아메리카를 인도라 착각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도인, 즉 인디언이라 부르고 그들이 '아히'라고 부르던 고추를 후추로 지레짐작하여 '페퍼'라 이름 붙인 사건도 세계 식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실수라 하겠다.
당시 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향신료를 찾으려고 안달을 냈을까? 대체 그 가치가 얼마나 컸기에 그토록 목숨을 걸고 찾아 나섰을까?
일반적으로 향신료는 고기를 보존하는데 필요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기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람에 말려 보존했는데, 어느 경우에나 향신료를 치는 편이 보존성이 더 높았다. 좀처럼 얻기 힘든 귀중한 육류를 먹으려면 향신료의 힘을 빌려 저장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또 그렇게 오래된 고기에 향신료를 문질러 넣으며 먹는 동안 단백질 썩는 냄새와 대량의 향신료가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복잡한 냄새가 대단히 신기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일종의 중독으로 빠지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고대부터 신에게 공물을 바칠 때 육류를 깨끗이 하기 위해 향기가 나는 식물이나 동물성 향료 및 각종 향신료를 대량으로 사용했다. 일련의 종교의식에서 산 제물로 바친 고기를 제사 후에 먹을 때도 향신료를 듬뿍 뿌렸다. 이 때문에 향이 있는 고기야말로 고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생겨났다.
아득히 먼 동방에서 배로 운송된 뒤 홍해 부근 해안에서 낙타의 등에 실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다다른 향신료가, 셈에 능한 페니키아 상인들 손에 유럽으로 들어와 부유층에 팔아 넘겨질 즈음에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터무니없는 가격이 되었다. 신대륙 발견을 코앞에 둔 무렵 후추는 같은 무게의 금과 거의 동등한 가격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명백하지 않은 이유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바람에 15세기 이후 유럽은 동쪽 바다 너머로 있는 향신료의 고향을 찾아 너도나도 광란의 길을 떠났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모한 향해자들을 선봉에 앞세운 유럽 열강들은 자신들이 직접 인도에 도달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 세계 야채 여행기 -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 정수윤 옮김 - 펴낸곳 장은문고 - 초판 2쇄 발행 2015년 9월 23일 - p92 ~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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