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에 일본 기술을 전수한 삼양식품의 전중윤 명예회장이 처음으로 라면을 한국에 소개했다. 전회장이 라면을 한국에 도입했던 이유는 먹을 것은 없는데 원조된 밀가루는 많고, 국민들은 밀가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하는 등등의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 라면이 나온 게 1963년,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곡물만 먹고 살다가 생전에 처음 보는 방법으로 튀긴 면이 나왔으니 말이다. 당시에 국수를 라면에 튀긴다는 생각은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맛도 참 없었다.
이렇게 초기에 철저하게 외면 받던 라면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속설이 있다. 전중윤 명예회장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삼양라면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춧가루를 넣을 것을 조언해 그렇게 만들었더니 그때부터 라면이 잘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싼 정부 비축분 고춧가루를 삼양에서 쓸 수 있게 했다는 풍문도 있다. 그때까지 라면의 국물은 일본식의 닭고기 국물이라 색깔이 하얗고 맛 역시 밋밋했다. 여기에 고춧가루가 가미되면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빨간 국물의 라면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한국인들의 고추 사람은 전혀 엉뚱한 데에서 그 기지를 발하고 있어 재미있다. 그 주인공은 가장 한국적인 라면이라 할 수 있는 '신라면'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식품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고추를 넣어 다른 맛의 식품을 만들었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라면은 역겨운 기름 맛이 전혀 나지 않고 감칠맛 나는 쪽으로 변해갔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의 라면 회사들이 계속 연구를 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라면을 개발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한국음식은 '밥'으로 통한다 / 최준식> |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라면인데, 라면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어왔다. 2차 대전시 패전국이 된 일본인들은 한동안 허기와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다. 미국에서 무상으로 대량의 밀가루가 들어왔지만, 쌀이 주식이던 일본인들은 밀가루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때 사업가였던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사람이 우연히 튀김집에 들러 튀김을 먹다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튀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후 안도 모모후쿠는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기름에 튀긴 다음 바싹 말려서 수분을 제거했다가 끓는 물에 넣으면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1961년 닛신식품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닭뼈를 우려낸 육수를 분말로 만들어 넣은 '치킨라면'을 출시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인트턴트 라면이다.
일본에서 라면이 나온 지 2년 뒤인 1963년 마침내 한국에도 라면이 상륙했다. 여기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양식품 진중윤 회장은 어느날 점심시간에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다가 수많은 사람이 꿀꿀이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줄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에 갔을 때 보았던 라면을 고국에 보급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꿀꿀이죽은 부대찌개의 경우처럼 미군 부대에서 버린 여러 음식 찌꺼기를 모아서 대충 끓인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삼양식품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서울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라면을 끓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줘 먹게 했다. 일종의 시식회를 연 것이다. 최초의 삼양라면은 닭뼈를 우려낸 육수를 분말 수프로 넣었는데, 라면을 먹어 본 사람들은 "국물에서 닭고기 맛이 난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곧 라면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어느새 사람들은 꿀꿀이죽 대신 라면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1971년 라면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서 컵라면이 나온 것이다. 컵라면 역시 닛신식품 사장 안도 모모후쿠가 개발한 것인데, 한 외국인 바이어가 컵에 라면을 부셔 넣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제 냄비나 그릇이 없어도 바로 물만 부으면 즉석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으니,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국의 삼양식품에서도 '삼양 컵라면'을 출시했다.
-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 지은이 도현신 - 펴낸곳 시대의창 - 초판 5쇄 2017년 9월 4일 펴냄 - p354 ~ 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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