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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중국의 매운맛 차이

산들행 2018. 11. 24. 11:32

왜 고추가 한반도에 널리 퍼졌는가

 

오늘날 일본음식에는 고추를 넣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심지어 일본 속담에는 "고추를 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일본의 매운맛은 고추보다 와사비가 보편적이다. 와사비는 스시나 사시미가 유행하면서 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해주는 중요한 향신료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경우는 또 다르다. 오늘날 창장(長江) 하류 지역의 사람들은 고추를 즐겨 먹지 않는다. 오히려 고추의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창장 중류와 상류 지역인 쓰촨, 충칭(中慶),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궈줘(貴州), 산시(陕西) 남부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그중에서도 쓰촨과 충칭 사람들은 고추, 후추, 천초를 섞은 '마라(麻辣)'의 매운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보인다. 마라의 매운맛 중 마(麻 마비할 마)의 맛은 천초와 후추에서 나온다. 라(辣 매울 랄)의 맛을 내는 것은 고추이다. 쓰촨 지역을 비롯하여 중국에서 매운맛을 즐겨 먹는 지역에서는 고추를 직접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고추기름을 음식의 재료로 사용한다. 아울러 고추, 후추, 천초에 진피(陳皮), 초마(椒麻), 초장(椒醬), 강즙(薑汁), 산향(蒜香), 마장(麻醬), 개말(芥末) 등과 같은 매운맛을 첨가하여 마라의 매운맛을 만들어낸다. 고추와 산초를 섞은 마라의 매운맛이 첨가된 음식을 먹으면 습윤하면서 냉기가 강한 날씨를 이겨낼 수 있다.

 

여기서 쓰촨 지역 사람들과 한국인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추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두 지역의 사람들은 천초를 통해서 매운맛을 즐기는 습관이 있었다. 다만 쓰촨인의 경우 지금까지도 여전히 천초와 고추를 함께 사용해서 음식을 조리한 반면, 한국인은 고추를 위주로 해서 매운맛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매운맛 유행의 한중일 문화적 차이 

일본은 16세기에 고추가 유입되었음에도 매운맛을 적극적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일본의 속담에 '고추를 먹으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일본은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와사비가 중요한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고추의 매운맛 전파는 캡사이신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확산되었다.

 

중국 쓰촨과 충징 지역 사람들은 고추, 후추, 천초를 넣은 마라(麻辣)의 매운맛을 선호한다. 마라의 매운맛 중 마(麻, 마비의 마)의 맛은 천초와 후추에서 나온다. 라(辣, 매울 랄)의 맛은 고추이고, 음식의 재료로 고추기름을 사용한다. 지역적 특성을 지닌 쓰촨음식이 베이징음식과 결합하여 일종의 퓨전음식으로 전환되면서 매운맛을 강조한다. 중국의 전국적인 매운맛 유행은 고추의 영양학적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 이후 식품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자극적인 지역음식을 내세운 결과다.

 

한국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고추의 매운맛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고추의 매운맛은 단맛과 결합하여 상품 고추장으로 탄생했고, 청양고추의 유행으로 매운맛이 강화되는 변환이 일어났다. 예를들면 일본에서 개발된 라면은 맵지 않으나, '신라면'처럼 한국인의 매운맛 취향과 결합하여 현지화하였고, 세계화 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핫소스의 매운맛 유행을 일어났다.



한국에서 매운 맛의 전파와 세계적 유행

매운 맛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이 매운맛은 고추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멕시코음식의 살사(salsa)가 지닌 칠리소스와 같은 핫소스가 개입했다.

본래 한국 음식의 매운 맛을 '달짝지근'한 매운맛인데, 칠리소스의 매운맛은 '혀에 불이 난' 것처럼 맵다. 한국음식이 왜 매워졌는지, 그 진화 과정을 알려면 현재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것의 역사적 연원을 살피는 작업이 요구된다.

한국인들이 즐기는 매운맛은 한국산 고추에서 나온 매운맛이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양념으로 만들어진 매운맛은 마늘이나 생강, 심지어 설탕과 함께 버무린 것이기 때문에 핫소스의 매운맛과는 다르다. 이것을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고추장이다. 한국의 고추장은 결코 고춧가루가 주된 성분이 아니다. 순창 전통고추장의 성분 배합 비율을 보면, 대략 '찹쌀(23.8) + 고춧가루(27.8) + 메주가루(8) + 소금(12.5) + 물(22.9) + 엿기름(5)'이라는 보고가 있다. 이 고추장의 배합비율은 비교적 재래방식의 고추장이다. 공장제 고추장은 찹쌀 대신에 밀가루나 보릿가루 따위가 이보다 더 많은 배합비율로 섞는다. 특히 엿기름이 5퍼센트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 고추장은 매우면서 동시에 달다.

고추장이 비교적 오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2004년 갑자기 유행했던 '불닭'은 한국에서 새로운 매운맛을 전개했다. 불닭의 매운맛은 청양고추의 매운맛과 칠리소스의 매운맛을 섞어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한국음식에 존재하는 매운맛과 달리 글로벌한 핫소스의 매운맛이다. 불닭과 같은 매운 맛은 이미 한국 고추의 매운맛에 길들여 있는 한국인의 입맛을 더욱 맵게 만들었다. 다만 불닭의 매운맛은 오랫동안 유행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낙지볶음은 고추장과 결합하여 '한국음식 = 매운맛'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낙지볶음은 청양고추 등 한국산 고추에서 나온 매운 맛이 주를 이루었다. 매운 낙지볶음만을 먹는 것은 부담스러워 항상 조개탕이 함께 나와 낙지볶음의 매운맛을 상쇄시킨다.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남쪽 골목에 형성되었던 낙지골목은 한국음식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현장이었다.

18세기 후반 한국음식에 고추가 들어간 일, 20세기 이후 고추장에 엿기름이나 설탕이 가미되면서 만들어진 단맛 강화, 1980년대 고추의 소과종인 청양고추의 개발과 유행을 통한 매운맛 강화, 1990년대 이후 칠리소스의 매운맛을 첨가시킨 불닭 등으로 그 매운맛의 전개가 변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음식인문학

- 주영하 지음

- 발행처 (주)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1판 5쇄 발행일 2015년 12월 21일

음식인문학(양장본 Hard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