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의 기원과 관련하여 인도 출신의 신문기자 아말 나즈(Amal Naji)는 재미난 주장을 펼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고추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리스본에 당도했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포르투갈인에 의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르완다로 전해졌다.
리스본에 도착한 고추는 포르투갈인에 의해 인도의 서부지역에 소개되었고,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져서 다른 지역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오스만제국의 인도 서부 침략에 의해 헝가리에 전해졌고, 다른 하나는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동남아시아 및 중국의 마카오로 전해졌다. 이것이 다시 표류하던 포르투갈 상선에 의해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들어온다. 이때가 바로 1543년 일본력 텐분(天文) 12년으로 조총이 일본열도에 상륙한 사건과 같은 때이다.
여기서 일본의 나가사키에 고추가 전래된 시기가 1543년이며, 그 이전에 중국의 마카오에 고추가 도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중반 이전에 고추는 중국과 일본에 도착했고, 일본에 도착한 고추가 다시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런데 일본의 다른 문헌에서 고추가 조선에서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1547년 이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까지 부산포는 제한적이나마 왜구와 조선인이 접촉하던 무역 장소였다. 그래서 1543년에 나가사키에 고추가 도착했고, 그것은 남방계 산물로 후추와 함께 부산포에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임진란 발발 이전인 1543년에서 1592년 사이에 고추는 한반도의 일부 남부지역에서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임진란 이후 일본의 문헌에는 고추가 한반도에 전래되었다(高麗胡椒)고 믿었고, 그 이름도 도우가라시(唐芥子)라 했다. 그러나 어떤 경로를 통해 고추가 임진란 이전에 한반도에 전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증을 펼치지 못한다.
<음식의 인문학 / 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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