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한반도에 전해진 과정에 대해 기록한 조선시대 문헌은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1709년 일본에서 발간된 《대화본초 大和本草》에서는 "고서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근래의 책에서 말하기를 옛날 일본에서는 번초가 없었는데, 수길공水吉公이 조선을 칠 때 그 나라에서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을 고려호초高麗胡椒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책을 쓴 이는 고추가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나가사키長崎에 전해졌지만, 임진왜란 때 본격적으로 전해졌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추는 포르투갈 무역선에 실려 1540년대에 마카오를 비롯한 중국의 무역항에 도착했다. 1543년에 포르투갈 상인이 다시 고추를 일본 규슈九州의 나가사키로, 1552년경에는 예수회 신부인 포르투갈인 발다자르 가고 Balthazar Gago(1520 ~ 1583) 등이 오이타大分현의 나카쓰中津 등지로 가져갔다. 이렇게 규슈의 동서 무역항에 도착한 고추는 일본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쓰시마를 거처 오늘날의 부산인 동래왜관에 전해졌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고추는 이미 경상도 일대까지 퍼저나갔다. 하지만 조선의 중부지역 사람들이나 나가사키와 나카쓰에서 먼 일본 혼슈本州 지역 사람들은 고추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은 임진왜란 중에 남쪽에서 왜군과 함께 고추가 올라왔다고 생각했고, 혼슈 지역 사람들은 전쟁에 패하고 귀국한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고추를 가져왔다고 믿었다.
- 향신료의 지구사(프레드 차라 지음 / 강경이 옮김)
특집 한국 향신료의 오래된 역사를 찾아서(주영하)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1판 2쇄 2015년 6월 29일
- p243 ~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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