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추사고택의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허균 도문대작의 생강 주산지

산들행 2017. 9. 15. 16:34

예산군 신암면에 소재한 추사고택에 가면 대련에 이런 글이 쓰여있다.
* 주련 : 시구나 문장을 종이나 판자에 새겨 기둥에 걸어 둔 것이 주련(柱聯)이다. 건축 장식이 건물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치장하는 기능을 한다면, 주련은 정서적 분위기를 고무시켜 건물의 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시문 내용을 아는 사람이 보게 되면 주련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것으로 탈바꿈된다.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최고로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
최고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주와 함께 하는 모임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시대 최고의 서예가이다.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뛰어난 예술가이자 까다로운 미식가였는데. 추사의 까다로운 식성에 대해서는 제주 유배 시절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시에서 자신은 '식탐 많은 노인〔(老饕 탐할 도〕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 許筠(1569~1618)은 최근에 조선시대의 음식 칼럼니스트 또는 미식평론가로 불리는데, 그의 음식사랑을 살펴보면 미식가를 넘어 탐식가로 볼 만 하다. 그가 조선시대의 미식가로 등장한 데에는 무엇보다 《성소부부고 惺所覆瓿藁》전집에 실린 〈도문대작 屠門大嚼〉(1611)이라는 글의 힘이 크다. 허균은 광해균 때 당파 싸움에 휩쓸려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거친 음식만 먹게 되자 전에 먹던 여러가지 음식이 생각났다. 허균이 어릴 때는 전국의 맛 좋은 음식들이 그의 집에 선물로 들어왔다. 임진왜란 때 강릉의 외가로 피난 가서 그곳의 여러 음식도 맛보았고,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여러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했기 때문에 그의 음식 편력은 유난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맛있는 음식 134종의 이름이나마 나열해놓고 "도축장의 문을 바라보면서 크게 씹는 흉내는 내본다"라는 뜻에서 〈도문대작〉을 남겼다. 허균이 꼽은 조선 최고의 채소와 해조류와 그 산지는 다음과 같다.

<생략>

생강〔薑 강〕 :  전주에서 나는 것이 좋고 담양과 창평의 것이 다음이다.

마늘〔蒜 산〕 : 영월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먹어도 냄새가 안 난다.

<채소의 인문학 / 정혜경>





12세기에 당시 가장 유명했던 살레르노 의학교의 의사들은 생강의 효능을 4행시로 찬양했다.


위장과 신장과 폐의 냉기에

열기가 있는 생강은 당연히 효과만점이다.

갈증을 해소하고, 원기를 북돋으며, 두뇌를 자극하는 생강은

노인에게 다시 젊은 시절의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거의 같은 시기에, 향신료와 약품에 관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겐의 수녀원장 힐데가르데는 생강을 기본재료로 사용하여 많은 전염방지 의약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만한 자들에게는 생강을 섭취하지 못하도록 만류하는데, "무지해지고 분별이 없어지며 무기력해지고 음탕해질 위험이 있기"때문이었다. 17세기에 출간된 『약초론』에서 니콜라 레므리 Nicolas Lemery(1645~1715)는 아시아에서 나는 뿌리줄기(생강)에 들어 있다고 추정되는 최음제의 효능을 찬양한다.


"곤봉 모양의 꽃이 달린 그 작은 갈대는 생명이 깃든 음부를 강하게 하고.... 노인들의 원기를 북돋아주며.... 정액을 자극한다."


<향신료의 역사 / 장-마리 펠트 지음 / 김중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