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돌을 사용해 곡물을 갈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 이후부터 곡물음식을 먹었다. 1만 2천 년 전 중국의 양쯔강 유역에서는 벼 농사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70 ~ 80 퍼센트를 곡물이 차지한다. 중국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콘지(congee)라는 쌀죽을 먹었다. 본래 콘지는 쌀이 아니라 중국의 5대 곡물 가운데 하나인 기장으로 끓였다. 기장 콘지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2700년 무렵 중국을 통치했다는 삼황오제에 관한 문헌에도 등장한다.
나일강 하구부터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넓은 땅을 일컫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만 1만년 전부터 여덟 가지 기본 작물을 재배했는데, 거기에는 곡물인 에머밀(emmer wheat), 일립계밀(einkorn wheat), 보리도 포함 되었다. 이같은 농경은 인류에게 정착 생활을 가능케 함으로서 여유 시간을 누리게 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서 초기 인류는 수렵이나 채집을 통해 먹을 것을 찾는 대신 정교한 도구를 제작하고 사회를 조직할 시간을 얻었다.
또한 곡물 재배는 시장 경제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의 메소아메리카에서 옥수수는 사회 경제 발전의 주된 요소였다. 최초의 옥수수 화석은 기원전 5000년경부터 만들어진 것이지만, 꽃가루와 녹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옥수수 경작은 그보다 앞선 5800년 무렵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수수 농사는 메소아메리카 사회가 복잡하게 발달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스테카ᆞ톨턱ᆞ마야 신화를 보면 옥수수가 중심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곡물 거래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와 숫자가 사용된다. 그 밖에 곡물 경작이 낳은 또 다른 중요한 결과는 발효기술이다. 보리를 발효시켜 맥주를 만드는 기술은 기원전 3000년경 신석기 시대의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맥주 자체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에 시작된 중동 지역이 더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에 쓰인 문헌에 맥주에 대해 최최로 언급한 기록이 보인다. 그 당시 수질이 별로 믿을 만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맥주는 곧 중동의 아침식사용 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호밀과 귀리는 신석기시대에 아나톨리아(터키)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나머지 지역으로 전해졌다.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는 지금까지도 호밀로 구운 흑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귀리죽은 북유럽의 토탄 늪에서 발견된 5000년 전 신석기 시대 미라의 위장에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이 미라는 물이끼의 낮은 산도 덕분에 완벽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 - 지은이 헤더 안트 앤더슨 / 옮긴이 이상원 - 펴낸곳 니커북스 - 초판 2쇄 발행 2016년 5월 10일 - p18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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