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의 음식문화에 일대 변화가 불어 닥쳤다. 그것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다. 그전까지는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김치를 담글 때 모양을 내기 위해 맨드라미꽃을 섞어 넣는 정도였다. 남아메리카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 심지어 유럽 여러 나라에도 고추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처럼 고추를 애용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에도 김치가 있는데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다. 물론 고추장도 없다. 그것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p48>
조선 후기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늦가을 초가지붕에 널어놓은 고추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 풍경을 보며 그들은 한국의 미美를 운운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르고 공활한가. 붉은색과 푸른색의 선명한 대비. 누런 초가지붕의 선. 흰옷을 입은 사람들. 마당에서 강아지, 닭들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 파란 눈의 외국인들에게는 그게 바로 천국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p49>
김치는 저菹 채소절임저, 지漬 담글지, 침채沈菜 가라앉을침 채소채, 젓국지, 짠지, 싱건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漬는 ‘담근다’는 뜻이다. 전라도 지역에 가면 아직도 김치를 ‘지’라고 부른다. 요즘 식당 간판을 보면 ‘묵은지’라는 글자가 자주 보이는데 이는 곧 ‘묵은 김치’다.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김치를 ‘짠지’라고 부른다. 김치를 소금에 절여 담근 것이므로 그렇게 불렀으리라. ‘싱건지’는 북한 지방에서 담가 먹는 백김치를 일컫는 말이다. 소금에 절이긴 했으나 싱겁게 만들었다는 뜻이겠다. 북쪽 지역이라 금방 쉴 염려가 없으므로 짜게 담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p89 ~90>
김치는 ‘침채沈菜 채소를 담그다’에서 온 말이다. 그 말이 음운 변화를 일으켜 ‘침채 → 팀채 → 딤채 → 짐채 → 김채’가 되었고, 마침내 ‘김치’라는 말로 굳어졌다. 조선 초기에 썼던 ‘딤채’라는 말은 오늘날 모 가전제품 회사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김치 전용 냉장고의 이름이기도 하다. 김장이라는 말은 ‘침장沈藏 담가숙성시킨다’에서 왔다. 침장이 ‘팀장 → 딤장 → 김장’으로 바뀐 것이다. <p90>
우리가 무심코 어떤 음식을 먹을 때도 거기엔 음양의 조화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가령 생맥주(찬 음식)와 치킨(더운 음식), 돼지고기(찬 음식)와 소주 혹은 새우젓(더운 음식), 생선회(찬 음식)와 청주(더운 음식)의 조합만 봐도 그렇다. 맥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체질적으로 몸이 더운 사람이다. 반대로 소주나 양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대개 차가운 체질이다. 그럼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그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관찰해보면 된다. 김치만 봐도 그렇다. 무김치는 더운 체질의 사람이, 배추김치는 차가운 체질을 가진 사람이 좋아한다. <p93>
- 칼과 입술 - 지은이 윤대녕 - 펴낸곳 마음산책 - 1판1쇄 발행 2016년 6ㅇ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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