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1년 여름 음력 윤5월 18일 아침에 궁중 약방의 도제조 김약로(金若魯, 1694~1753)가 영조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요즈음도 고추장을 계속 드시옵니까?” 그러자 영조는 그렇다고 하면서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고 했다. 이에 김안로는 “그것은 조종부 집의 것입니다. 다시 올리라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조의 수라에는 어떤 고추장이 올랐을까? 마침 영조 때 의관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의 〈치선〉에 ‘조만초장법(造蠻椒醬法)’이란 제목의 고추장 담그는 법이 나온다.
콩을 꼼꼼하게 고르고 물에 일어 모래와 돌을 없애며 보통 방법대로 메주를 만든 뒤에, 바싹 말려서 가루로 만들고 체에 쳐서 받는다. 콩을 한 말마다 고춧가루 세 홉, 찹쌀가루 한 되의 비율로 넣고, 여기에 맛 좋은 청장을 휘저어 뒤섞으면서 아주 되게 만들어 작은 항아리에 넣은 뒤 햇볕에 쪼이면 된다.
지금의 고추장 담그는 법과 비슷하지만 조청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맛은 그리 달지 않았을 듯하다. 이 고추장 담그는 법이 당시의 표준 제조법이었던 모양이다. 영조 연간인 1766년에 《증보산림경제》를 편찬하면서 여러 가지 고추장 요리법을 책에 적어둔 것으로 보아 당시 민간에서 고추장이 괘나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조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조종부 집의 고추장 요리법은 숙종 때 어의였던 이시필이 지은 《소문사설》 〈식치방〉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쑤어놓은 콩 두 말과 흰 쌀가루 다섯 되를 섞고, 고운 가루가 되도록 마구 찧어서 빈 섬에 넣는다. 1, 2월에 이레 동안 햇볕에 말린 뒤 좋은 고춧가루 여섯 되를 섞고, 또 엿기름 한 되, 찹 쌀 한 되를 모두 가루로 만들어 진하게 쑤어 빨리 식힌 뒤, 단 간장을 적당히 넣는다. 또 좋은 전복 다섯 개를 비스듬히 저미고, 대하와 홍합은 적당히, 그리고 생강을 조각내여 항아리에 넣은 뒤 보름 동안 식힌다. 그런 뒤 시원한 곳에 두고 꺼내 먹는다.
이시필은 이 요리법의 이름을 ‘순창고추장 만드는 법(淳昌苦草醬造法)’ 이라고 적었다. 오늘날 순창은 고추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시필이 소개한 고추장과 지금의 순창고추장이 어떤 연관이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숙종과 영조 때 문헌 중에서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하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시필이 말했던 순창은 바로 순창 조씨인 조언신(조종부의 부친)의 집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추정된다. 영조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조종부 집의 고추장도 유중림의 표준 고추장 요리법보다는 이시필의 ‘순창고추장 만드는 법’과 같은 방법으로 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영조는 고추장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1752년 음력 4월 10일자 《승정원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날도 도제조 김약로가 “조종부의 장은 과연 잘 담갔다고들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영조는 “고추장은 근래 들어 담근 것이지, 만약 옛날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선행(金善行, 1716~1768)이 “지방의 여염집에서는 성행했습니다”라고 했다. 이 대화로 미루어 보면 영조 때 들어서야 수라에 고추장을 올렸던 듯하다. 그러나 서울이나 지방의 여염집에서는 이미 고추장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유중림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민간의 문헌에서는 고추장을 ‘만초장(蠻椒醬)’ 이라고 적었다. 여기에서 ‘만(蠻)’은 남방의 오랑캐로 지금의 동남아시아를 뜻한다. 즉 동남아시아에서 전해진 ‘초(椒)’로 만든 장(醬)이란 말이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에서는 고추장을 한자로 ‘초장(椒醬)’ 또는 ‘고초장(苦椒醬, 古椒醬, 枯椒醬)’, 심지어 ‘호초장(胡椒醬)’이라고도 적었다. 실제로 《승정원일기》에서 고추장과 관련된 단어들을 검색하면 영조 대에서만 22건이 검색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영조야말로 조선 국왕들 중에서 가장 고추장을 즐겨 먹은 왕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지어 75세의 영조는 스스로 “송이·생복(生鰒전복 복)·아치(兒아이 아 雉꿩 치, 어린 꿩)·고초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고추장을 즐겨 먹었다. 더욱이 “옛날에도 만약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 조선의 미식가들 - 지은이 주영하 - 발행처 (주)휴머니스트출판그룹 - 1판 2쇄 발행일 2019년 8월 19일 - p159~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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