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산새는 빨간 열매를 좋아한다. 천종삼, 지종삼의 차이

산들행 2017. 9. 12. 06:42

천종삼은 이름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돋아 자란 산삼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은 산새가 산삼의 열매를 따먹고 갈긴 똥에 섞인 것입니다. 새의 뱃속을 통과했다 해서 조복삼鳥腹蔘이라고도 합니다. 지종삼은 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진 뒤 2년 이상 굴러다니다 그 속의 씨에서 싹을 틔워 자란 것입니다. 산삼 중의 하급인 인종삼은 사람이 산삼 씨앗을 깊은 산에 심은 것입니다. 꼭지腦 모양이 길게 생겼다고 해서 장뇌삼長腦蔘이라고도 부릅니다. 산삼은 같은 씨라 해도 이처럼 태생에 따라 다르고 가격차도 엄청납니다.


인종삼은 사람이 심고 보살핀 것이니 차치하더라도 천종삼과 지종삼은 얼핏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둘 다 스스로 싹을 틔워 나온 산삼인데, 씨앗이 새의 창자를 거쳤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불과 반나절 남짓 새의 창자속에 머운 게 무슨 대수이겠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둘의 운명은 판이합니다.


대다수의 산삼 열매는 빨갛게 익은 상태로 땅에 떨어집니다. 열매의 과육이 벗겨지면서 씨앗이 여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년 이상입니다. 그 후 적절한 생존 환경을 만나면 발아합니다. 그 사이 너무 깊이 파묻히거나 부서질 수도 있고, 다행히 싹을 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종삼의 씨는, 새똥에 섞여 땅에 떨어지면 거의 모두가 이듬해 봄싹을 내고 뿌리를 힘차게 내린다고 합니다. 신기하지요. 열매가 새의 창자에서 소화되면서 과육 부분이 소화액에 의해 완전히 벗겨지고 씨앗이 드러납니다. 씨앗은 새의 체온 덕분에 쉽게 배아를 트고, 소화 효소는 새싹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게다가 함께 떨어진 새똥은 훌륭한  비료가 됩니다. 천종삼과 지종삼은 비교할 수 없는 유리한 발아 조건을 갖고 출발한 셈입니다.


산삼은 가능한 한 많은 산새를 불러 열매를 따먹도록 유혹합니다. 유혹의 손짓은 열매의 빨간색입니다. 산삼은 온통 녹색인 숲 속에서 산새의 눈에 잘 뜨이기 위해 보색補色인 빨간색을 자연 선택한 것입니다. 건강한 후세를 가능한 한 많이 남기기 위해 산삼과 산새가 수만 년에 걸쳐 선택한 공진화共進化의 산물입니다.


천종삼이 부르는 게 값이니 요즘은 천종삼을 키우는 '농부 심마니'가 등장했습니다. 산새를 잡아 닭처럼 가두어 키우면서 산삼 열매를 사료에 섞어 먹입니다. 그런 뒤 씨앗이 섞인 똥을 골라 깊은 산 나만의 은밀한 곳에 심어 천종삼을 만든다고 합니다. 기발한 발상이지요. 그런데 최소한 10년, 길게는 30~40년 뒤 종자를 심었던 외진 곳을 농부 심마니가 어떻게 다시 찾아낼지 궁금합니다.

- 식물의 인문학 / 박중환 지음

- (주)도서출판 한길사

- 제1판 제2쇄 2015년 1월 13일

- p234~237

식물의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