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짓는 농산물, 언제 들어왔을까
고조선시대는 농사보다 채취를, 그러니까 이 땅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주로 먹었으리라. 곡식은 콩(대두)이나 팥, 나무는 밤, 감, 배, 앵두, 으름 같은 것들. 채소는 달래, 취, 뿌리는 마, 도라지.
고조선에서 삼국시대 사이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었다. 벼에 이어 보리, 수수, 밀, 기장이 이 땅에 들어왔다. 삼국시대에는 조, 녹두, 순무, 참외, 가지, 마늘, 차, 참깨, 들깨가 멀리서 가까이서 이 땅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다. 발해와 통일신라가 공존하던 시대는 동부, 아욱, 당근, 오이, 파가 들어오고 고려시대에는 메밀, 토란, 배추, 상추, 부추, 수박, 동아, 생강, 문익점의 목화, 사과, 포도, 귤, 대추가 들어왔단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완두, 미나리, 무화과, 쑥갓, 유채가 들어왔고, 중기에는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온 씨가 들어왔다. 고구마, 호박, 고추, 담배와 같은 농산물들이다. 이들 가운데 감자는 한 발 늦게 들어왔단다. 토마토 역시 이 시기에 들어온 걸로 나오지만, 본격 농사짓기는 훗날 일제 강점기부터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강낭콩, 칼콩, 양파, 수세미오이가 모습을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배추, 단호박, 딸기가 들어왔고 해방 이후에는 여러 가지 서양채소와 허브들, 열대과일 그리고 야콘이 들어왔다.
세월 따라 변하는 걸까?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6가지 채소가 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오이, 가지, 순무, 아욱, 박이었다.
또한 1766년 영조시대 발간한 『증보산림경제』를 살펴보았다. 이때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농사짓기(치농) 편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게 벼. 벼는 올벼, 중올벼, 늦벼로 나뉘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씨앗도 가짓수가 많고 많다. 그다음은 기장, 조, 피, 수수, 주곡이 중심이다. 그리고 콩(대두, 서리태, 나물콩), 팥, 녹두, 변두, 완두콩, 그 다음이 보리와 밀, 다음에 메밀, 귀리, 참깨, 들깨, 옥수수, 율무. 삼, 모시풀, 목화, 어저귀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구마, 이고구마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채소농사(치포) 편에서는 맨 처음 수박이 나온다. 그다음이 참외, 오이, 동아, 박, 호박, 생강, 파, 큰마늘, 부추, 염교, 토란, 가지, 미나리, 무, 순무, 겨자, 배추, 상추, 머위, 시금치, 아욱, 쑥갓, 우엉, 적로(滴露; 초석잠, 두루미냉이), 맨드라미(즙을 짜서 김치 물들이는데 썼단다), 고추, 양하, 우엉, 거여목, 당귀, 소루쟁이, 순재, 두릅, 차조기, 올방개(부자), 넘나물, 근대, 평지, 아주까리, 회향풀, 정가, 향유, 수세미오이, 박하, 도라지, 더덕, 삽주, 오갈피싹, 죽순, 산나물, 냉이, 말냉이, 비름, 산갓, 고들빼기, 메꽃(뿌리를 먹었단다), 고사리, 고비, 삼백초, 여뀌, 마늘, 달래, 돌나물, 닭의장풀, 물방아, 물쑥, 다북쑥, 괭이밥, 서토리, 석순, 솔망이, 도삵취, 말가리, 자개, 송이, 표고, 석이.
채소는 현재와 무척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서토리, 토삵취, 말가리처럼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고, 지금은 길러서까지 먹지 않는 맨드라미, 소루쟁이, 닭의장풀, 괭이밥도 있다.
지금은 수입농산물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는 대변화의 시기다. 하지만 대대로 이어져온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살까? 그 아이들은 순무, 아욱, 머위, 이런 채소를 알기나 할까?
- 밥꽃 마중 - 지은이 장영란, 김광화 -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 - 초판 1쇄 발행 2017년 2월 27일 - p429~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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