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콩

궁중에서 먹던 간장과 진장은 검은콩으로 만들었다

산들행 2018. 1. 27. 18:15

이완길 상궁은 이 장독대 옆의 조그만 기와집에서 생각시 두세명을 데리고 소주방에서 쓰는 간장과 고추장만을 전담하는 상궁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장고마마님'이었다. 장고마마는 주방상궁을 거친 노상궁이 맡아서 했는데 날이 밝으면 몸을 깨끗하게 씻고 자물통을 열고 장광에 들어가 정한 물로 이 독 저 독을 반들반들하게 닦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임무였다. 그리고 햇장은 뚜껑을 열고 주방상궁이 가져간 장항아리에서 진장, 중장, 햇장을 쓸 만큼씩만 떠 내준 다음 다시 문을 잠그고 다른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엄하게 감독했다.


장맛은 팔진미의 주인이라 했다. 장맛이 좋아야 음식이 맛있고, 장이 잘 되어야 그 집안의 한 해가 평안하다고 믿었다.


궁중에서 간장 담글 때 쓰는 메주는 일반 평민이 사용하는 메주하고 달랐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메주콩이 달랐다. 일반에서는 노란 메주콩을 사용했지만 궁중에서는 검정콩을 메주콩으로 사용했다. 자잘한 검정콩을 반쯤 찧어서 납작하게 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서 띄운 메주는 보통 메주의 네 배 크기로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말라 있었다.


까맣게 뜬 메주를 솔로 깨끗하게 씻어서 네 쪽으로 쪼개 독에 재고 소금물을 풀어서 체에 밭치는데 소금물을 물 한 말에 소금이 한 되 정도 양으로 맞추었다. 우선 메주를 한 켜 놓은 다음 소금물을 한 바가지 붓고 꿀 세 숟가락과 참기름 세 숟가락을 떠넣고 그 위에 빨갛게 피운 숯덩어리 세 개를 넣었다. 메주에 들어 있는 잡균을 소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넷으로 쪼갠 메주를 장독의 삼분의 일 정도까지 차곡차곡 재고 그 위로터는 가운데를 비우고 우물 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소금물을 가득 부어둔다.


그렇게 담근 간장은 7, 8개월 정도를 두었다가 장물을 가만히 떠내 고운 체에 깨끗하게 밭친 다음 햇볕을 쪼이며 점점 졸아서 진한 간장이 된다.


여염집 간장 같으면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나면 메주를 건져 된장을 담그겠지만 궁중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두었다가 메주는 꺼내 버렸다. 왕과 왕비의 수라에는 된장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둔 검정콩 메주로는 된장을 담가봐야 고소한 맛이 없었다. 소주방에서는 궁중 사람들이 먹을 된장을 보통 메주로 다시 담가야 했다.


이렇게 만든 간장은 햇장으로 장광의 맨 마지막 줄에 놓고 몇 십년을 묵혀 갔다. 간장독은 언제나 넘치도록 가득 담겨 있었는데 가장 오래된 순서대로 독이 비게 되면 다음 해에 담근 간장을 조금 떠서 빈 독을 채워 가며 진장을 유지했다.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진장은 불로 달이지 않았음에도 오래 묵혀 조청처럼 끈적끈적하고 달착지근한 진미가 되었다.


주방상궁은 날마다 그날에 필요한 장을 진장이면 진장으로, 중장이면 중장으로, 아니면 햇장이면 햇장으로 작은 항아리에 필요한 만큼을 요구했다. 많이 떠 가서 여러 날을 묵히면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


탕을 끓이는 데는 묽은 장을 쓰고, 조치나 나물을 무치는 데는 중장을, 전복초나 약식을 만드는 데는 달고 거무스름한 진장을 썼다. 간장에 대해 유난히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은 고종이나 순종이 맵고 짠 것을 싫어해 간장이며 고추장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열두첩 수라상으로 차린 세월

(조전왕조 궁중음식 중요무형무화재 황혜성의 자전 에세이)

- 저자 박남희

- 발행  : 조선일보사

- 2001년 6월 21일 초판 2쇄 발행

- p157 ~ 160

열두첩 수라상으로 차린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