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은 통일벼의 보급이다. 통일벼가 보급되고 때마침 계속되는 대풍으로 1975년 쌀 자급을 달성하자 1977년부터 쌀막걸리가 허용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껏 기대를 안고 출시된 쌀막걸리였지만 소비자들의 폭팔적인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이미 밀막걸리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으로, 당시 소비자들은 밀막걸리에 비해 쌀막걸리가 싱거워서 맛이 없다는 평을 내놓았다.
쌀막걸리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1979년부터 다시 정책이 바뀌어 쌀막걸리 주조가 금지되어 밀막걸리가 부활했다. 식량 수급의 불안정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는데, 정부의 주조 관련 제조 방침이 자주 바뀌는 통에 주조장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주와 맥주 업계가 바로 이런 여러 가지 악재를 활용해 시장을 잠식하면서 막걸리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게 든다. 막걸리가 이들 술에 밀려 추억의 술이 된 것이다.
막걸리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가운데 또다시 정책이 바뀌어 1990년부터 쌀막걸리 주조가 다시 허용되었다. 쌀막걸리 주조 허용은 통일벼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 농가에서 주로 생산하던 통일벼는 밥맛이 없어 생각보다 소비가 많지 않았는데, 통일벼 쌀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쌀막걸리를 권장한 것이다.
다시 등장한 쌀막걸리와 쌀과 밀을 혼합한 막걸리 등은 쌀 소비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밀막걸리의 위상은 아직도 요지부동이었다. 이는 한국인의 입맛이 이미 밀막걸리에 적응되어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쌀막걸리야 말로 한국의 전통 막걸리라며 밀막걸리를 공격했지만 이런 공격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막걸리 주조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누룩과도 적잖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쌀막걸리와 밀막걸리는 일본의 누룩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소비자들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00년 동안 막걸리는 일본의 누룩을 사용해 만든 것으로, 이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누룩을 이용해 만든 막걸리를 한국 막걸리로 인식하면서 마셔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막걸리를 탐하다. - 이종호 지음 - 펴낸곳 북카라반 - 초판 1쇄 2018년 4월 20일 펴냄 -p4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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