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이형기의 낙화와 김소월의 첫치마

산들행 2019. 6. 8. 21:17


낙화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희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첫치마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